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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Sep 15. 2022

선택

  나는 선택했다. 유년기는 수많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품은 시기이다. 그 설레고 아픈 시기를 지나며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우고, 동시에 잃는다. 내가 고른 것을 대가로 잃은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흐릿해진 과거는 어렸던 내가 보았던 풍경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다시는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을 느끼지 못하리라.

  그런 미래가 있었다. 마치 잘 짜인 공략집을 보고 키운 캐릭터처럼, 이성적이고, 도전적이고, 현실적이게 살아온 삶. 나는 성공했다. 그건 분명 크나큰 운이 따라줬기 때문이고, 그 안의 작은 부분은 내 노력 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잃어버렸다. 그녀를.

  나는 눈앞에 선 그녀를 바라보았다. 먼 곳을 내다보는 눈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 시절의 눈이었다.

  더 늦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는다면 나는 잃었던 유년기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순수했던 그 시절로, 모든 것을 잃기 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나는 안정적이고 성공한 미래를 잃는다. 이성적인 모든 것은 사라진다. 여기서 이대로 그녀와 안고 옥상 너머 푸른 하늘로 몸을 던진다. 우리가 걸어갈 미래는 그런 것이었다.

  나를 기다려주듯이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하늘, 지구, 우주, 세상은 모두 변함이 없었다. 늘 변하는 것은 나뿐.

  손을 잡는다. 피가 흐르는 따스한 손에 온기가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목깃을 적신 땀을 말려준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새하얗다. 너의 눈 안에는 이 모든 풍경이 들어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정해졌다. 미래는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자리를 잡는다. 그건 이상적이고 완벽한 미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둘이서 서로의 몸을 껴안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결말. 그 미래가 나를 기다렸다.

  유년기는 아직 이어졌다. 사라지지 않았다. 구름이 흘러가듯 천천히, 천천히 그 모습을 바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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