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가르쳐준 삶

삶은 하루,,

by 이미 덤

할아버지의 죽음.


철들어 만난 가까운 이의 죽음.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묘하다.


젊은 날 카랑카랑 카리스마도 알겠고,

돌아가시기 직전의 초라한 인간의 모습도 보았고,

그리고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바뀌어 나온 모습도..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 동안 어렴풋이 알았던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가까워진 듯하다.


내 마음은 수 천 가지의 갈래로 가지를 뻗었다.


나를 예뻐하셨던 매력적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깊은 슬픔으로.

극도로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의지했던 할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티격대면서도 늘 할아버지를 옆에서 보살폈던 아빠 잃은 엄마의 마음으로.

그것이 언젠가는 내가 부모를 잃을 자명한 미래라는 두려움으로.

또 언젠가는 내 죽음의 모습일거라는 명확한 죽음의 미래로.

거리를 걷고, 웃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했을 죽음의 보편성으로,

저들이 앞으로 겪을 그들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그들의 죽음까지.

그렇게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자리 잡아 사라지지도 않았다.


내가 요즘 고민했던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허무한 티끌 같은 고민임도 알겠고,

그렇다고 죽음의 미래를 담보로 지금 참고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가엾고..

한편으로는 언젠가 죽어갈 얄미운 이웃을 그저 이해해주고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으셨던 간에..


내 삶에 큰 획을 긋는 교훈을 주셨음은 분명하다.


언젠가는 극도의 슬픔이며, 극복하지 못 할 내 어미의 죽음이 온다는.

그 슬픔도 내 죽음과 함께 언젠가는 묻힐 것이라는, 그런 앎.

내 조카는 언젠가 내 죽음 앞에서

큰 슬픔에 잠길 테고,,

곧 다시금 웃을 테다..

나처럼.


그렇게 내 죽음은.. 우리 조카에게는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도 죽은 자가 된다.


이번에 느낀 바로는..

죽은 자와 산 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 차이 뿐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지기에..


할아버지의 주검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거기에는 생각도, 움직임도, 혼자서는 부패당하지 않을 힘도 없었다.

어떤 기운, 찰나의 차이로 할아버지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그것이 죽음인가?


그래서 특별한 냉동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어야만 했다.


이미 멀리 떠나 버리고 남은 몸뚱이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그 몸뚱이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제례를 거쳤다.

부정이라도 탈까.. 염려하며..

오랫동안 인습으로 인정받은 법칙에 따라 삼가며 조심스러웠다.


태어나기보다 분명 죽기가 더 어려운 일 같았다.

아니,

죽은 자의 몸뚱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말이다.


살아서는 힘없고, 가엾은 늙은이의 몸으로

요양원에 자리잡고 있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서,, 신이 된 듯.

다양한 예에 따라 음식을 받고, 절을 받으셨다.


많은 자손들이 까만 옷을 입고 절을 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 모습을 살아계셔 보셨다며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삶이 아름답다 느끼셨을까?


다행히 내가 느꼈다.

아름답다고, 잘 살아오신 것 같다고..

깊은 다짐을 하였다.


엄마 아빠 살아계실 때,,

절을 많이 해야 겠다고..

많이많이 해드려야 겠다고..


자식들이 함께 절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우리 엄마, 아빠께는

절대 돌아가신 뒤에 보여드리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며칠이 지난 나는

이제 다시 웃고, 먹고, 내 미래를 꿈꾼다.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가?

그런데도 기를 쓰고,

오늘 당장 행복하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내일 죽더라도,

우리는 오늘 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


화장터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고자 고심했다.

이렇게 죽을 걸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그 수많은 고통을 긍정적으로 견뎌내자고

모두가 염불 외우듯 왜 살아가야 하냐고 물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은..


우리 할아버지 덕분에 내 오늘의 삶이 있구나.

고맙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살아,, 힘든 일 이겨내고

자식들을 키워주셨기에..

오늘 또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이 자리에 서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또 나라는 인간 존재도 죽어 주검이 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사라질 사람하나 만들고자,,

인간이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냐고 물으면..

또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가 주신 생명의 불씨가 자라..

이 자리에 서 있으며,

한 때는 마냥 행복했던 때를 만났었으며..

지금은 이렇게 당신의 죽음에 눈물 흘리고 있다고..


그러면서..

분명히.. 머지 않아..

저 자리가 내 자리라고..

명확하게 깨달았다.


난, 죽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결국 죽을 테니.. 그냥 살아도 될 것 같긴 한데..

나는 또 이렇게 의미 없는 생각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