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여름에는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강남에 사는 부자 지인이 있다.
남편이 지독한 구두쇠라
이 언니가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
건사할 자식도 없는 부부가
그 돈 언제 쓰려고 그렇게 아끼느냐고 물었다.
나이 들어서 아프면 병원비로 쓸거라고 했다.
근데, 그집 남편은 막상 몸이 아파도
돈이 아까워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장례비가 아까워서 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산 사람 병원비도 아까운데
죽은 사람 장례비는 얼마나 아까울까?
지독한 짠돌이 남편 때문에 이혼 소송까지 갔다가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료 (깍고 깍고 깍아서)
3000만원을 주고 다시 붙어 살고 있다.
1인당 만원 이상 외식 물가에 고민 하는 부부다.
어느 주말 부부가 갈치조림을 먹으러 나왔는데
1인당 2.5만원인 걸 보고 식당문을 나왔다고 했다.
먹는 걸 지독히 아낀다.
나는 식재료에 아낌없이 돈을 써서
우리집 엥겔지수가 상당히 높다.
힘들게 사는 친정언니에게 받은 국산 고춧가루며 국산 깨소금을
강남 부자에게 몇 번 챙겨준 적이 있었는데
항상 받아먹다가 막상 국산 고춧가루 사려니
너무 비싸서 안 샀다고 했다.
내가 잘못한 거 같다.
버릇되고 습관될까봐 뭘 주기가 망설여진다.
강남 부자는 여름 내내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지지 않는 게 유일한 사치라고 했다.
나는 올해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에
혼자서 수박 두 통을 사먹었다는 얘길 하자,
강남 부자가 물었다.
"수박 얼마짜리야? "
ㅎㅎㅎㅎㅎㅎ
이 언니는 모든 말에 가격 텍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나 뭐 샀어. 얼마."
"나 뭐 먹었어. 얼마."
"나 뭐 했어. 얼마"
내가 산 새 물건을 보면 묻는다.
"그거 얼마 주고 샀어?"
반면교사로 좋은 본보기다.
나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면 가격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가격을 물어보기 전에 가격 말하지 않기.
이 쉬운 게 정말 안 된다.
문장을 다 적으면 마침표를 찍듯이
자연스레 가격을 말하게 된다.
자신에게 돈 쓰는 건 인색하지만
하나 뿐인 조카를 위해 중학교, 고등학교 과외비를 내주고 대학등록금까지 책임진다는 고모다.
나에게는 글쓰기 소재를 흥청망청 퍼주는 고마운 부자다.
"언니는 수박 안 사먹어?"
남편이 당뇨전단계라 과일을 자제하고 있다며
남편이 먹지 않아서 혼자 먹기 미안해서
못 사 먹고 있다고 했다.
남편을 위한 건지, 남편 눈치를 보는 건지
강남 한복판에 살면서도 수박도 맘편히 못 사 먹는 부자를 보면서
이 무더운 여름, 우리 강남 부자네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 helloimnik,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