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톨 Sep 25. 2021

review) 평등하다는 착각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빚에 허덕여 삶의 낭떠러지 끝에 선 사람들에게 솔깃한 제안이 찾아온다. 그 제안은 6일 동안 6개의 게임을 완수하면 456억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 뒤 이 게임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잔혹한 것인지를 파악하지만, 어차피 빚뿐인 현실에서 다시 돌아갈 곳도 없는 그들은 게임에서 우승하여 삶을 갱생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게임에 참여한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서 시달려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한다는 말은 꽤 괜찮게 들리지만, 실제로 그들은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을까? 첫 게임이 끝나자마자 게임에서는 바깥세상과 똑같은 불평등과 차별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밖에서 몰래 가져온 도구를 통해서 게임을 수월하게 진행하고, 어떤 사람은 소위 말하는 편법을 써서 다음에 진행할 게임의 정보를 미리 입수한다. 그리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게임을 위한 팀 구성에 있어서 사회적 약자(여성과 노인)를 배제시키고자 한다.



"우린 이미 노인이랑 여자가 있으니까 나머지는 남자들로 뽑아야 돼. 확률상 남자가 유리한 게임이 더 많아."


"그냥 솔직히 말해. 여자랑 노인이랑 편먹기 싫은 거잖아"



애초부터 이 게임은 처음부터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게임에서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평등이었다면, 그 많은 감시 속에서 미녀가 라이터를 이용해 쉽게 달고나 게임을 통과할 수도, 의사인 병기가 오랜 시간 그의 자리를 비우고 장기를 적출하며 이익을 볼 수도, 성인 남성에게만 유리한 게임이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게임 관리자는 단순히 사전에 참가자가 게임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채, 게임을 위한 팀 구성이나 순서 등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만으로 '평등하게 경쟁'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계속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익을 취하고, 누군가는 계속 불이익을 겪는 이 상황을 본다면 누구라도 이 게임 과정을 '평등하게 경쟁'한다고 보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이를 보면 게임의 관리자가 말하는 공평함과 평등함은 단지 참가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명목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게임의 진행에 있어 진정한 목적은 평등하게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심화시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이기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자들은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 암전 상황에서 약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함께 팀을 이루었던 사람들도 배신하고, 게임 진행에 있어 방해되는 사람을 죽이면서 말이다. 남이 죽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절박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서 씁쓸한 상금을 얻은 기훈에게 게임의 창조자, 일남이 하는 말은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이다. 즉, 부유한 자들은 이 게임을 단순히 '재미'로 느꼈지만, 가난한 자들에게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치열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초반부 기훈이 경주마에 베팅했던 것처럼, 부유한 자들에게는 게임 참여자들이 경주마와 같은 오락거리에 불과했다.


다시 처음부터 상기시켜보면, 첫 번째로 게임의 관리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평등이었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해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두 번째로 아무것도 모른 채 고르는 자신의 선택이 불리해도 핸디캡을 주지 않는다는 점, 세 번째로 어떤 수를 써서 라도 남을 이기고자 하는 것, 네 번째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좁혀질 수 없는 거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과 같은 4가지 요소를 고려했을 때 결국 이것은 평등을 명목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하지만 성공을 위한 과정에서는 온갖 불평등과 차별이 도사리고 있다. 출발선부터 이미 격차가 벌어져 있기도 하고, 성별과 연령에 따라서 특정 집단은 차별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능력주의는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에는 집중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이 남들보다 불리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며 뒤처질수록 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간다. 그 과정에서 도덕심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여성과 노인은 배제되고 서로를 죽이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유독 정의감에 불타던 주인공 기훈조차도 일남과 구슬로 홀짝 게임을 할 때 일남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을 이끄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승리를 위해 누구나 비도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게임의 결과, 성인 남성인 기훈이 승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게임 속에서 늘 불리했던 여성과 노인과 달리 그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늘 유리한 위치를 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훈은 본인의 노력만으로 치열하게 싸워서 이겨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 그 게임은 ‘평등’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review) 알고리즘은  편견없이 공평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