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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May 14. 2023

남편의 여행

반올림

어제, 남편은 제부와 둘이 한 달 일정으로 전국 일주 낚시 여행을 떠났다. 칠십 인생에 가장이라는 부담감 없이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것이다.     


결혼 초 아이들이 어릴 땐 가족 여행을 꽤 많이 다녔다. 자가용을 사고 나선 거의 짬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주고 싶었고, 가족 취미생활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나중에 나이 들면, 캠핑카로 전국을 일주하며 살자고 했다. 

그런데, 삶이 그리 호락호락하기만 했겠는가, 남편 사업이 잘못되어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살림을 모두 잃고 힘든 상황이 오면서 우리는 여행을 생각하기 힘든 세월을 한동안 살아야 했다. 남편은 해보지 않았던 힘든 일과 궂은일을 마다않고 해 주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고, 아이들 결혼까지 시키고 나니 비로소 남편과 나 둘만의 한가롭고 편안한 시간이 왔다.     


남편과 외국 여행도 꽤 했지만, 남편은 국내 여행이 더 낫단다. 

인생 후반에 들어서면서 난 일과 취미생활에 손주까지 보느라 바쁘다. 친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니고 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남편은 직장과 집 쳇바퀴 같은 무료한 일상 속에서 낚시, 축구 TV 시청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코로나로 한동안 외출도 쉽지 않았고, 겨우내 추위 때문에 낚시도 못 하던 남편이 언제부턴가 ‘고흥에 가서 낚시나 하며 살아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직장 재계약을 하지 않고 백수가 되었다.      


“여보, 당신 소원이라니 고흥에 한 번 가 봅시다”     


난, 남편 소원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고흥에 가 보자고 했다.

사실 고흥엔 내 친구가 살고 있지만, 남편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다. 왜 하필 그 먼 고흥이냐고 물으니, 그곳에 가면 바다낚시, 민물낚시를 골고루 할 수 있단다. 혼자라도 가서 살겠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런데, 가 보니 혼자 생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남편의 실망이 컸다.      


“당신, 한 달 동안 전국 일주 낚시 여행하는 건 어때요?”     


난, 또 다른 제안을 해 주었다. 남편은 그 의견에 동의했고, 어제, 제부와 함께 대장정의 낚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칠십 인생 중 가장 자유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준 남편에 대한 보답이다. 아이들도 아빠의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아이들이 챙겨준 용돈도 남편의 입꼬리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덩달아, 나와 여동생도 한 달간 휴가 아닌 휴가를 맞게 되었다. 난, 남편의 카톡에 몇 개의 음악과 장문의 글을 써 보냈다. 남편에게서 감동의 답글이 왔다.      


내가 생각해도 남편을 위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여행을 끝내고 남편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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