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매 이야기 2
꼴매의 묘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바로 다른 동네로 이사한 뒤 까미를 제외한 우리 집 고양이 셋이 새 집을 탈출한 사건이었다.
꼴매는 일등이가 돌아오고 난 뒤에야 집을 찾아 돌아왔다. 이전 문단에 링크한 글을 쓸 때만 해도 누가 먼저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등이가 먼저였다. 일등이는 당시의 탈출로 바로 임신에 성공했다.
일등이의 배가 불러오고, 일등이가 낳은 일곱 마리 새끼들 중 네 마리만 살아남고, 그들의 성장을 보조하는 바쁜 기간 동안 꼴매는 살그머니 집을 나갔다 돌아와서 엄마가 되었다. 원래도 몸이 작은 편이어서, 한동안 임신한 줄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꼴매는 추석 연휴에 새끼를 낳았다. 우리 가족의 시골집은 강원도였고, 나는 거기에 갈 때마다 멀미에 시달렸다. 정말 가기 싫었는데, 그 해 추석에는 배가 부를 대로 부른 꼴매 덕에 집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새끼가 일곱 마리나 뒤엉켜있던 일등이와는 달리 꼴매의 뱃속에 든 새끼는 네 마리. 엄마와 아빠는 나 혼자 남겨두고 떠나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꼴매는 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사히 새끼들을 낳았다. 오히려 내가 그 옆에 가서 설치는 것이 독이었다. 꼴매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을 돌보기보다 내 무릎에 앉아 골골대며 쓰다듬을 받고 싶어 했다. 생애 처음으로 느껴본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내게 의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릎에서 골골대는 꼴매를 새끼들에게 돌려보내려 산실에 다시 넣어주었을 때였다. 꼬물거리는 새끼들 틈에서 움직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새끼였다. 꼴매와 비슷한 털 색을 가진 그 새끼 고양이의 얼굴에는 눈이 없었다. 눈알이 없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눈알이 들어차야 할 자리가 아예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눈이 생겨났어야 해요, 하듯 옴폭 들어가 있을 뿐. 머리 크기도 다른 새끼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뇌 자체가 덜 생긴 것 같았다.
싸늘하게 식어가던 그 새끼 고양이를 꺼내 잔뜩 뽑은 휴지 위에 뉘었다. 그리고 살포시 감싸서 밖으로 나가, 근처 화단에 몰래 묻었다. 나중에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꼭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꼴매의 네 마리 새끼들 중 세 마리가 살아남았다. 처음 태어난 새끼는 꼴매처럼 무늬가 있었지만 색깔은 황갈색에 가까운 암컷이었다. 둘째는 턱시도였고, 셋째는 꼴매와 비슷한 무늬에 밝은 회색 털을 지닌 수컷이었다. 우리는 고심 끝에 세 마리를 한 세트로 묶어 '산', '구름',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꼴매는 새끼들이 젖을 먹는 동안에는 꼭 붙어있다가,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할 시점에 은근슬쩍 새끼들과 거리를 두고 나를 찾았다.
꼴매의 새끼 산이, 구름이, 바다는 자연스레 일등이와 일등이의 새끼인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와 어울려 다녔다. 꼴매는 엄마가 된 뒤에도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새끼를 낳고 나면 수더분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꼴매는 더 새침을 떨었다. 우리는 꼴매가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고 추측했다. 꼴매는 같은 고양이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른 고양이들도 꼴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새침데기 엄마는 아랑곳 않고, 꼴매의 새끼들은 일등이 가족과 조금씩 어울려갔다. 특히 산이가 이들 무리에 쉽게 섞여 들어갔고, 다음은 구름이였다. 문제는 바다였다. 바다는 꼴매와는 완전히 반대의 문제로 고양이들 틈에 섞이지 못했다.
바다는 너무, 너무 길고양이였다.
당시 유행하던 1박 2일 식으로 말하자면, 완전 시베리아 야생 수컷 호랑이였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저의 브런치북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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