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빈 자리에도 무게가 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람은 벽지를 스치고, 내 어깨를 가볍게 더듬으며 지나간다. 그 손길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다. 단지 ‘지났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나는 오래된 의자에 앉아 벽의 금을 바라본다. 금은 조용히 자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루하루 자신을 늘려간다. 마치 상처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작은 긁힘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누군가는 그 금을 덮으려 페인트를 칠하겠지만, 나는 지켜본다. 그것이 자라는 것을.
생각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따뜻함이 아닌, 사라진 따뜻함. 존재가 아닌, 부재. 바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 고요, 혹은 상실 같은 것들. 마치 흘려보낸 말이 뒤늦게 마음에 내려앉는 것처럼.
바람은 사라졌고, 방은 고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부재의 무게를 느낀다.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가득 찬 공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붙잡으려 했던 모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