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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Apr 01. 2023

'나'는 뭐지?(2/2)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한 가지 재밌는 가정을 해보자. 인간은 누구나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항상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기억은 항상 불완전한 것이고, 자아에너지로서 어느 하나의 물질 안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면, 나의 동일성은 한순간에 의심받게 될 것이다. 어제는 알프스의 목축업자였고 오늘은 서울의 회사원이며, 내일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일수도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전환되고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마다 의심의 여지없이 지금의 내가 어제의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믿는다. 렇게 생명은 자연스럽게 존속다. 항상성, 자기 조직적 능력, 면역력 등 모든 생명력의 일부가 자아에게 동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생명은 위대한 자연의 아낌없는 협조로 매일매일 자아에게 결코 새롭게 보여서는 안 될 정체성을 부여하 있지는 않을까. 물론, 이러한 가정은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다만, 이런 식으로 자아의 불안정성을 공격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 속에서 자아에 대한 희미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으리란 가정이 앞서곤 한다.


  우리의 몸을 한없이 확대해서 관찰해 보면 텅 비어있다. 겉보기에는 막혀있고 가득 차 보이지만, 장기-세포-분자-원자-전자순으로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토록 단단하던 물질들은 은 사이에 아주 가끔 존재하는 가스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역학으로 바라본 우리의 상태 응축된 에너지다. 명은 엔트로피 법칙을 대부분 거부하며 일정한 패턴을 지닌 파동 상태, 순간의 축 위에 에너지가 잠시 응축되어 있는 특이한 상태 볼 수 있다. 명이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는 우주에서 굉장히 드물고 이상한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아가 있다고 한다. 자아는 허공 사이에 흩뿌려진 생명 에너지와 가끔 번뜩이는 물질 사이, 그 어디쯤에서 흔들리는 윤곽선을 따라 존재다.

  나로서 내가 나를 알고, 나는 나의 세계다. 나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내가 나에게 알려준 사실이므로 나에게 내가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는 것은 곧 자기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나의 반적인 자연과학적 상태를 점검해 보았듯, 나는 나 자체로 실질적인 동일성을 찾아볼 수 없는 존재다. 의 자아 어딘가에 간 점이라도 찍어 두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한 나 사이에서 무한하게 펼쳐진 진공 가운데 나의 동일성을 입증해 줄 증거없다. 내가 나로서 계속 존재하려적어도 나의 동일성을 지켜줄 확실한 고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의 세포는 너의 세포와 같고, 나의 DNA는 불안정하며,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뇌는 어둠 속으로 떨어진다. 나의 세계를 지탱하는 생명이 나의 어디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기억은 나의 일부이지 전체로 볼 수 없다. 나를 관측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지만, 나를 관측하는 순간 나는 없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잇는 '창발성'이 때론 자아의 형성을 묘사하는 유용한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세계를 억지로 조각내어 사물의 이치를 합의하려는 일은 무지의 영역을 애써 외면려는 실용적인 관점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내 것이고, 앞으로도 내 것일 거라는 증명이 없다면, 나는 단지 나라고 속아 넘기는 일종의 파동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존재일까? 기억이 모두 없어진다면 나의 이름조차 모를 나라는 존재가 정말 나로서 계속 같은 존재라고 믿을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쉽게 믿고 있는 나의 연속성은 나에게 연속성이 있다고 믿는 감정적인 신뢰를 도구로 삼아, 그 동일성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나에 대한 속성들-일관성, 동일성, 연속성, 유일성 등-은 불완전한 나를 감추고 생명현상을 효율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자연선택일지 모른다.






3. 자아의 의미에 대한 탐구


(1)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것

  

  여러 철학자와 생물학자, 그리고 인접 학문의 학자들이 내비친 참신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자아의 의미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힘든 이유는 자아의 윤곽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과와 같 눈에 보이는 물체부터, 오감을 포함한 관찰 능력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객체라면, 합의에 이른 하나의 관점으로 대상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오감으로 판별할 수 없으며, 어떤 관찰 도구나 방법으로도 대표적인 실체를 포착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개념다. 나 스스로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나의 일관성을 뒷받침하는 실재가 자아라는 것은 누구나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다른 자아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자아를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아직까지 서로의 자아를 서로에게 증명하는 일은 어설프게 그린 추상화를 상대에게 보여주며, 사과가 당신 앞에 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대에 대한 나의 입을 통해 상대방에게도 자아가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거란 추론이 참이라고 믿는 것뿐이다. 자아는 어쩌면 생각 그 자체일 수도, 생명체가 외부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항상성을 가지는 것 마냥 생물의 기본적인 속성일 수도 있다. 아니면, 수십 억 광년 떨어진 곳에 점으로 존재하는 자아를 두고, 수조 개의 생명이 여기 이 자리에서 아바타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러나 답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을 찾기 어려운 자아의 의미(본질)에 대한 탐구는 정답을 향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여지를 남겨놓고 모두를 빛나게 해 줄 공리를 고민하는 일로 바꿔볼 수 있다. 가령, '자아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해.'라는 섣부른 결론을 따른다면,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뒤따르고 윤리와 인생의 무가치함이 대두되기 시작하며, 무엇보다 내면의 정체성에 대 환멸을 느낄 것이다. 한편, 이러한 과정-자아에 대해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조차 자아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어쨌든, 답을 알 수 없을 때 적절한 선택을 내리는 다음의 필터를 따라 자아의 의미를 고민해 볼 수 있다.


필터 1. 가능한 선택지를 탐색하고 인간에게 미칠 각각의 장단점과 결과를 예측해 본 후 가장 나은 선택지를 따르기로 한다.

필터 2.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와 목표에 가장 큰 도움이 될 선택지를 따르기로 한다.


  위 방법으로 탐색 가능한 자아론들을 각 필터에 집어넣기 시작하면 개인과 집단, 사회에 그나마 유익한 자아론을 올릴 수 있다. 개인의 생존과 사회적 원리에 기여하는 자아의 의미가 곧 자아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라는 단순한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위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분분 흩어져 있는 자아론들을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일주의자아론 (Solipsism): 자신만이 현실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다른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학설이다. 이론적으로는 입증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현실을 부정하는 입장다.


ㆍ구성주의자이론(Constructivism): 인간의 경험, 인식, 문화, 사회적 요인 등 모두 현실의 구성 요소며, 인간이 현실을 구성하는 주체라는 입장이다. 자아를 포함하고 있는 모든 현실주어진 맥락 안에서 구성된 것이다.


물리주의자아론 (Physicalism):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적인 현상 역시 물리적인 원리에 의해 설명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특별성을 치켜세우는 영혼설, 유일주의론은 매우 인간중심적인 견해이며,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일반적인 원리에 지배받는다.


이상주의자아론 (Idealism): 자신의 의식이나 정신적인 요소가 현실의 기본적인 성격이며, 현실은 인간의 의식과 생각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는 입장다.


언어게임이론 (Language-game theory): 인간의 정신적인 현상은 언어 게임의 결과다.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으로부터 자아가 파생된다는 입장이다.


  필터를 적용해 보자.



필터 1. 가능한 선택지를 탐색하고 인간에게 미칠 각각의 장단점과 결과를 예측해 본 후 가장 나은 선택지를 따르기로 한다.


  아래 분석에 따르면 구성주의자아론이 가장 나은 선택지다.


유일주의자아론
장점: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강화할 수 있어 자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단점: 현실적인 관계 및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촉진하며, 자아 중심적인 생각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 어려울 것이다.


ㆍ구성주의자
장점: 자아의 형성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찾기 때문에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존중하고 사회적 교류와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자정작용을 촉진할 수 있다. 자아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의 원인을 비교적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단점: 인의 자아 형성에 대한 자유도나 창의성이 제약되며, 내면 보다 외적인 구성요소들에 대한 비중이 커져 자칫 사회무한책임론으로 흐를 수 있다.

결과: 개인의 자아실현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관계와 사회적 협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ㆍ물리주의자아론
장점: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하여 현실적인 대상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점: 정신적, 인과적인 측면에서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서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과: 모든 걸 세분화하는 경향은 본질을 놓치게 만들고, 인간의 행동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제한되며, 다양성은 멸종되고, 증거의 부족이나 애매성이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과학적 사고가 강화되어 모든 형태의 비과학적 낭비를 줄일 수 있겠으나 과학적 사고의 한계가 곧 개인과 사회의 한계가 될 것이다.


ㆍ이상주의자아론
장점: 현실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할 수 있다.
단점: 현실 이상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과: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이 매우 이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념 간에 끝없는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인간의 행위, 문화, 사고습관, 규칙 등을 변화시킬 것이다.


ㆍ언어게임이론
장점: 언어적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오해나 분쟁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점: 언어게임을 통해 현실을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언어게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 새로운 언어 및 의사소통 방식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사회 전반에 문화적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간과되고 언어의 한계가 현실과 대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을 때마다 자아는 다시 새로운 언어게임으로 인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지위를 갖게 다. 이것은 자칫 개인의 자아를 후순위에 두는 공동체주의나 집단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필터 2.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와 목표에 가장 큰 도움이 될 선택지를 따르기로 한다.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와 목표를 위한 선택지를 따를 때 가장 적합한 자아론은 구성주의자아론이다. 구성주의자론은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개인적 자아가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자아는 개인의 경험과 관계, 문화적 배경, 가치관 등에 따라 형성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구성주의자론은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정하여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자아론이다.

  반면,

유일주의자아론은 개인의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다른 개인과의 상호의존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물리주의자아론은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뇌나 물리적인 원리로 설명 가능하다는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성과 자유도를 인정하지만,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인간의 공통적인 가치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제한적이다.

이상주의자아론은 인간이 이상적인 모델에 부합하도록 자신을 개조해 나가야 한다는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이상적인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개인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언어게임이론은 언어와 사고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며, 언어를 통해 다양한 관계와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자론과 유사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대한 명확한 제시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2) 사실에 더 가까운 것


  사실에 근접한 자아론은 물리주의자아론이다. 물리주의자아론은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해석을 중심으로 자아에게 접근하는 방식다. 이론적으로 모든 인간 행동이 뇌의 화학적 반응이나 물리적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과 같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인간행동과 정신 현상을 설명한다. 사회적, 철학적, 언어적 측면을 중심에 두고 있는 다른 자아론들물리주의자아론 보다 추상적인 개념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과직접적인 관련성이 적다.


  리주의자아론에 매료된 수많은 학자들은 자아의 물리적인 기초들원자, 분자, 뇌세포 등의 물질적인 기초부터,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을 학적으로 연구한다. 뇌는 자아에 관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함으로써 자아와 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예를 들어 뇌 영역의 활동 패턴을 분석하거나, 뇌 손상으로 인한 자아의 변화 등을 연구함으로써 자아와 뇌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자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한편으로, 자아를 물질과 물리화학적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석연치 않을 것이다. 자아의 존엄성이나 영혼의 존재 여부, 개인의 독특성이 해체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을 진화심리학이나 생리학으로 낱낱이 파헤쳤을 때 드는 기분보다 훨씬 더 께름칙하고 기분 나쁠 수 있다. 주관적 가치가 객관화하여 데이터로 변해버리는 순간, 막연한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물리주의자아론이 끝내 자아의 개념을 이론으로 정리해 낸다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했을 때,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 조상을 공유한다고 했을 때, 인공지능이 앞으로 사람의 모든 일을 대체한다고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감정적 쇼크가 모든 인간을 덮칠 것이다.


  그러나 물리주의자아론은 그 방법론과는 별개로 아직까지는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물리학을 포함한 어느 과학 분야에서도 자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뇌와 관련된 생물학적인 기작들은 인간의 의식과 인지 능력, 감정, 인격 등 다양한 인간적, 사회적인 특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모든 분야들을 망라할 과학적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자아를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전기 신호와 화학적인 시그널을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뇌 활동을 전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뇌과학도 자아와 같은 복잡한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자아와 같은 인간적인 현상을 완전히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화학, 뇌과학, 생물학, 물리학, 인지과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지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4. 자아와 미래


(1) 인공지능과 자아의 결합


  최근,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 속도가 모두를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공지능이 자아를 가질 수 있는지, 인간의 자아의 일부에 인공지능이 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없다. 자아의 정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점, 외부에서 내부의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 지능이 없는 개체에도 자아가 존재한다고 추론하는 이상-단세포생물, 무뇌생물, 식물 등-인공지능의 유사지능을 자아의 일부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점 등이 선결과제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 기술과 과학 발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인공지능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알 수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모를 거라는 가정 보다 앞으로 알게 되기까지 충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점이 인류발전의 원리였다.


  인지과학자 데이비드 샬머스(David Chalmers)는 "감성적인 뉴로사이언스(Emotional Neuroscientist)" 가설을 제시했다. 리가 경험하는 감정과 의식방식을 뇌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여 규명해 낼 수 있다면, 인공지능에도 이를 당연히 적용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뇌는 감정과 관련된 다양한 생리학적 활동을 수행하는데, 화학 물질인 뉴로트랜스미터와 여러 호르몬의 분비가 인간의 의식과 감정 상태를 만든다고 본다. 특정한 의식이나 감정에 따라 변화하는 뇌의 생리학적 반응, 물질의 분비와 소멸, 신경신호의 패턴 등을 연구하여 의식과 감정을 원본 수준으로 역추적할 수 있고, 의식의 일부는 비슷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로사이언스 분야의 연구자들이 내놓은 업적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지난 2018년, 미국 퍼듀대학의 종밍류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 공명영상 장치(FMRI)로 뇌를 스캔하여 관찰자가 바라보는 이미지를 상당 수준으로 재현해 냈고, 미국 UC 버클리의 잭 갈란트 팀은 이미지를 넘어 유튜브를 시청 중인 관찰자의 뇌를 통해 비슷한 수준의 동영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연구들은 자아와 관련된 신경과학적 지식을 더욱 발전시키며, 인간의 의식과 상호작용하는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기술적 초월주의(Technological Transcendentalism)"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의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지능을 발전시킬 것이며,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가설은 그의 중점 가설인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과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 특이점은 기술의 지수 함수적인 발전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상상도 못 했던 비선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론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 사회 분야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발생할 것이고, 인간의 자아 역시 기술적으로 초월되어 생물학적 자아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자아를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그가 제시한 두 가지 가설이 논리적으로 참이거나 현실적일 때 개연성을 가진다. 기술적 특이점이 아예 오지 않거나 기술적 초월성이 인공지능의 한계 밖에 있다면, 커즈와일의 청사진은 그저 재밌는 상상에 그칠 것이다.


*소결 : 인공지능은 끝내 자아를 만들고, 가지고, 인간의 것과 결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뉴로사이언스의 눈부신 발전, 기술의 지수 함수적인 증강, 인공지능이 만드는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이라는 외부 요인은 구성주의자아론이나 물리주의자아론의 입장에서 상당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자아의 구성 요소를 내외부에서 찾는 구성주의자아론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또 다른 외부적 요인이 될 것이고, 물리주의자아론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훌륭한 관찰자이자 창조자가 될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에서 왜 그런 수를 두었는지 그 어떤 인간도 이해할 수 없었듯이, 인공지능은 자아의 개념에 대한 인간적인 정의는 뒷전에 두고 자아를 창조하고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원리나 개념에 대한 규명이 인공지능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2) 자아에 대한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술은 늘 새로운 서비스를 창조한다. 자아가 무엇이든지 간에 개인주의의 강화와 현실의 확대-증강현실,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는  자아와 관련된 새로운 서비스들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생각과 감정을 창조하는 단계부터, 외부세계에 행위를 나열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자아는 각각의 계에서 기술집약적인 서비스들결합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산업이 자아의 구성과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 뒤의 산업들은 자아의 기능과 속성에 집중할 것이다. 이를테면 자아를 중심으로 순환하던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들과 앞으로의 산업들다음의 대략적인 구분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자아의 구성과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인 산업>

의식과 감정의 창조 단계 - 출판, 미디어, 심리서비스, 신경정신의료서비스, 종교, 관광 등

○ 구체화 - 교육서비스, 물리적 의료서비스, 커뮤니케이션서비스, 각종 생활편의서비스, 미용서비스, 오락서비스, 주거서비스 등

○ 실현 - 컨설팅서비스, 경험서비스, 직업 및 사업 관련 서비스, 각종 창조 및 예술활동이나 대회 산업 등


<자아의 기능과 속성에 초점을 맞출 새로운 산업>

○ 표현기능의 확대 - 뇌 스캔 기술을 이용한 이미지, 음성, 음악, 문자 등의 제약 없는 출력.

○ 의식의 확장 - 뇌의 전기적 신호를 외부 장치로 전송하거나 의식의 집합을 가상의 공간으로 업로드.

○ 자아의 구성 요소에 대한 직접적인 조절 - 기억, 성격, 성향, 감정, 습관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

○ 인공지능과 결합 - 사고, 추론, 기억, 판단, 연산 등의 의식 활동을 인공지능으로 대체.


  령, 페이스북은 두피 근처에 장착하는 기능적 근적외선 분광기를 개발 중이다. 분광기에서 나오는 빛은 피부와 조직, 뼈를 거의 투명하게 뚫고 가는 반면,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은 뚫지 못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헤모글로빈의 근적외선 흡수 정도를 분석하여 뇌에서 나타나는 피의 흐름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뇌 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장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뇌의 인터페이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상상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단어를 타이하거나,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음악, 그림, 영상 등을 즉시 컴퓨터로 출력할 수 있다.


  이것보다 좀 더 야심 찬 장치는 미국 방위고등계획국이 발주한 프로젝트 ‘신경공학 시스템디자인(NESD)’이다. 최대 10만 개의 뉴런을 선택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100만 개의 전극을 이용해 뇌 신호를 외부와 주고받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한,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운영 중인 뉴럴링크(Neuralink)라는 벤처회사는 극도로 얇은 그물을 두피 밑에 이식하여 뇌가 기계와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뇌에 아주 가까이 전극을 두면 뇌의 신호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그밖에 자아에 대해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들은 다양하다. 생체 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신체 반응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사용자의 자아를 관리하는 서비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개인화 미디어 서비스나 생활편의형 구독 서비스 등이 주목받고 있다.



(3) 자아의 변화


  그동안 인간의 자아는 다양한 맥락 안에서 여러 방향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생물학적 진화, 사회 분위기와 제도, 정치적 요구, 교육과 문화, 사상과 이념, 기술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 등을 통해 우리의 의식은 타고난 것 이상으로 수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하물며, 개인의 일생 안에서도 자아는 많은 반성과 수정을 반복하고 있다.


   구성주의자아론에 따르면 자아를 구성하는 외적 요인의 변화는 곧 자아의 변화를 의미한다. 자아가 여러 가지 구성체의 집합인 이상 변화는 불가피다. 인위적인 것부터 초자연적인 것까지,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며 자아에게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자아의 시대별 변화 양상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한 가지 경향성 가지고 있다.


[자아는 점점 강해진다]

무지 -  - 강조 - 발전 - 확장

 : 자아에 대한 개인의 몰입, 사회나 집단에서 자아가 차지하는 위상, 현실에 대한 자아의 영향력, 자아의 의미와 구성요건에 대한 주관적 가치 등은 시대를 거듭하며 점점 강해지고 있다.


고대 시대(무지): 자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은 단체나 집단의 일원으로 여겨졌고, 인간의 삶은 종교와 신화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표보다는 집단의 이익과 목적이 중요시되었다.

중세 시대(인지): 개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자아의 개념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개인의 내면과 신념, 취향, 성격 등이 인지 되기 시작하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인격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가했다.

근대 시대(강조): 개인주의가 대두되면서 자아 개념이 크게 발전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강조되었다. 이 무렵,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더욱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현대 시대(발전):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삶은 더욱 개인화하고 다양화했다. 이로 인해 자아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신념과 가치관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아가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과 자유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들도 유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까운 미래(확장): 
  인간의 역사는 자아 향해 떨어지고 있다. 타인과 사물에 대한 시선은 좁아지고, 나에 대한 몰입은 점점 강화다. 구성주의자아론을 지지하지만, 자아에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은 사실 유일주의자아론에 더 가깝다. 세계와의 작용점에는 항상 나의 의지와 생각, 안위가 자리한다. 이러한 양상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자아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외부환경의 변화일 뿐이다. 신체적 본능 뒤에 따라오는 정신적 욕구, 객관적 가치를 넘어서는 주관적 가치에 이끌려 우리는 더욱더 자아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과 신경생물학 등의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자아의 확장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수준의 학습과 추론 능력을 갖추게 되고 기술혁명이 일어난다면, 어느 SF 영화처럼 상의 공간에 업로드된 자아가 영생을 얻게 되거나 자아의 복제재가 생활가전에 주입되어 본자아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창조할 수도 있다. , 인간의 내면에만 머물던 자아가 다른 사물로 확장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에서는 자아의 다양성과 개성이 더욱 존중받을 것다. '개인화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인간들은 더욱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문화와 국가의 경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면, 하나의 지역과 문화 양식 안에만 머물던 자아의 형성 과정이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역시 자아의 형식적인 측면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5. 작은 결론


  자아에 대한 완벽한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그것'은 '어떤 것'의 일부이거나 전부일 수 있고, 언어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이거나 아니면, 합의되지 않은 존재론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새로운 종류의 존재 개념일 수도 있다. 자아는 다면적인 양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견해와 분야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아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서 인격, 인생, 성품, 환경 등의 의미까지 불투명해지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의 존재가 자아의 확실한 의미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아의 의미를 탐구할수록 존재는 더 선명해진다. 우주의 일부인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던질수록, 우주는 시간 위에 새긴 더 많은 단서들을 그 우주에게 보여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자신의 인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탐구 결과가 아니다. 인식이라는 경험과 능력을 가진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도 세계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겹겹으로 쌓여있는 우주의 모든 우주들을 그 우주가 침범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인식인 것이며, 자아는 그 자체로 세계의 형식을 확장하려는 생명 에너지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공간이나 인위적인 시간으로 보는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구성요소를 각각의 특수한 형식으로 규정해야만 이전 보다 더 뚜렷하게 존재의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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