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돌아가고 내 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삼촌이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삼촌은 태연하게 등을 돌리고 주방에 서서 차를 내리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삼촌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아야."
"삼촌, 대체 뭔데?"
"뭐가?"
삼촌은 등짝이 따가운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등을 긁었다.
"나 다 들었어."
"뭐... 를 들었는데...?"
순간 차를 마시던 삼촌의 손이 멈칫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나에게 뭐를 숨기고 있는 걸까. 의심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뭘 진행해?"
나는 무심한 듯 그 남자와 삼촌의 대화를 툭 던지고 삼촌의 반응을 살폈다.
"아... 그건..."
예상대로다. 삼촌은 당황할 때마다 머리를 긁었다. 같이 산 세월이 있는데, 나도 어느 정도 삼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정말 얘기 안 해줄 거야?"
삼촌의 무심한 표정을 보는 순간 참고 있던 화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가 핑 돌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찻잔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찻잔의 형태가 지금의 내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 새벽 업쳐메고 온 의식이 없는 아이, 나를 알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의사, 무언가 숨기는듯한 삼촌의 태도, 알 수 없는 대화들까지. 이젠 의구심을 넘어 공포감까지 내 본능을 건드리고 있었다. 삼촌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할 수 없지. 원래... 지금 얘기해선 안 되는 건데..."
삼촌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뜸을 들였다.
"이제 자유야."
"뭐라고?"
"이제 자유라고. 언제든지 원할 때 밖에 나갈 수 있어."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삼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분노를 눌러 버리고 설레는 마음이 새로 생겨 삐쭉 새어 나왔다.
"갑자기? 진짜? 왜?"
"바깥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양이야. 정부에서도 금지시켰던 20세 이하 사람들의 야외활동을 해제시키는 걸 논의 중에 있고."
말을 하는 삼촌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아마 내가 바깥세상에 나가는 것이 걱정이 되긴 할 것이다. 난 한 번도 이 집 현관 문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갑작스러운 정부의 방침은 아직 삼촌을 안심시키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드디어. 드디어 나도 나갈 수 있다.
"너무 걱정 마 삼촌. 나 잘 적응할 수 있어."
나는 삼촌을 꼭 안아줬다. 나도 저 방호복을 입고 돈을 벌러 나가고 싶었다. 매일 지쳐 돌아오는 삼촌의 표정을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촌은 그저 말없이 나를 꼭 안아줬다. 삼촌이 나를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길거리에서 죽었거나 고아가 돼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삼촌의 은혜는 내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꼭 갚을 것이라 다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서로의 등을 쓸어내렸다.
"자. 이제 자야지. 충분한 숙면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지? 아무리 방호복을 입는다고 해도 기초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갑자기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어."
"응!"
나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양치를 하고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삼촌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불 속에 들어가 플래시를 책 글자에 비췄다. 책을 다 읽고 이불을 걷어내자 어느덧 한 뼘만 한 방 창문을 통해 어둠이 들어와 앉았다. 삼촌은 마치 정해진 루틴처럼 내 볼에 뽀뽀를 해주고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방을 나가는 삼촌의 뒷모습이 어둡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아마 오늘 있었던 해프닝 때문 일 것이다. 외부인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삼촌과 나의 정해진 일과는 보통 때와 똑같았다.
다만 바뀐 게 있다면 오늘 이후 내 방 문에 채워졌던 자물쇠는 더 이상 잠기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