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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05. 2022

김도영 소설집[달력4]

정부의 20세 미만 외부활동 금지 해제 발표를 이틀 앞두 의사 아저씨의 방문이 잦아졌다. 해제 일주일 전부터 건강에 관련된 체크리스트를 관련 보건소에 제출하는 절차가 마무리되면 순차적으로 공무원들이 건강 서류를 제출 완료한 신청자들에 한해 유선 진료를 진행한다고 했다.

"자. 착착 진행 잘되고 있네. 몸도 이상 없고. 12년 만에 자유라..."

이제 남자는 삼촌이 없을 때도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삼촌 없이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는 너무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손에 집히는 대로 남자를 향해 집어던졌다. 하지만 매일 내 건강을 위해 애써주는 그의 정성에 내 경계심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나갈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료를 마친 남자가 식탁의자에 앉았다.

"아직 안 끝났어요?"

보통 남자는 진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진료 가방을 챙겨 방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오늘은 마치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식탁의자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요? 끝났으면 나가세요. 이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내쪽으로 의자를 끌어 앉았다. 평상시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의 행동에 나는 주변에 뾰족한 것이 있나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너... 삼촌을 완전히 믿어?"

"뭐라고요?"

"그니깐 삼촌이 한 말들 다 믿냐고. 너희 부모님이 너 구하려 돌아가셨다던가, 밖에 나가면 안 된다던가 하는 말들 말이야."

그때 마침 삼촌이 방으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불쌍한 것..."

남자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 들어온 삼촌과 그 남자는 서로 쳐다보지 않았다. 둘의 분위기가 냉랭했다.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가자 삼촌은 식탁에 앉아 위스키를 큰 컵에 가득 채웠다.

"삼촌... 밥은?"

삼촌은 위스키가 가득 채워진 컵을 입에 갖다 댔다. 삼촌의 목젖이 역동적으로 위아래로 반복되더니 어느새 컵에 들어있던 위스키가 깨끗하게 비워졌다.

컵을 내려놓은 삼촌 나를 무섭게 쳐다봤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너!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식탁을 내려치는 소리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삼촌. 왜 그래... 취했어?"

삼촌은 위스키를 한 컵 더 따라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마음대로 해! 삼촌은 이제 네 방에 들어오지 않을 거야. 삼촌을 찾으러 돌아다니든지 말든지 너 마음대로 하란 말이야!"

문을 부서질 듯 닫고 나가는 삼촌의 표정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 밖으로 나가는 게 싫은 건가? 아니면...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질 않았다. 저번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최근 들어 삼촌의 행동은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어김없이 그 남자가 진료 가방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내 윗옷을 올리고 청진기를 내 등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내일이면 자유네. 진정한 자유..."

"아저씨. 어제 말한 거요. 무슨 뜻이에요?"

"무슨 말?"

"삼촌을 진짜 믿냐고 했잖아요."

내 입으로 이렇게 묻는 거 자체가 삼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삼촌을 의심하는 내 모습이 화가 나도록 미웠다.

"내가 그랬었나? 그냥 지나가면서 한말이겠지."

일부러 그러는지 남자는 평소보다 더 무심하게 행동했다. 지만 그가 명 그냥 지나가며 한말은 아니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내 방문 밖을 나가는 그 남자의 모습을 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쳐다봤다. 그 남자의 옷에서 풍겨 나오는 시큼한 소독약 냄새는 내 기분까지 비릿하게 만들었다. 그 남자가 나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쿵 하는 소리와 언쟁을 벌이는 듯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어떤 남자의 비명소리.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 문밖을 뛰쳐나갔다.


그 찢어질 듯 절규하는 소리는 바로 삼촌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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