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냄새!"
집에 들어온 형사 한 명이 범죄현장임을 알리는 노란 테이프를 위로 올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발을 딛자마자 콧속으로 들어오는 썩은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급하게 소매를 코에 가져다 댔다.
"여기... 상상했던 거보다 더 열악하네요. 어떻게 여기서 12년을... 이 쳐 죽일 놈들."
15년 전 이 지역에서 아동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실종된 아동의 아버지는 이 지역의 시의원이었다. 언론에서는 시의원의 외아들이 실종됐다며 앞다투어 보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시의원인 친부가 범인이 아니냐며 3부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목격자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 번은 자신이 이 실종사건의 범인이라며 경찰서에 전화를 건 사람이 있었다. 경찰은 발신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20명의 전담팀을 구성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조사 끝에 술에 취한 한 남성의 세상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일탈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 물론 그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지금 세상이 원하는 정의는 이 남자의 벌금형이 아니었다. 과연 진범은 누구이며 아동이 생사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세상이 요구하고 있는 정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이후 정부가 교체되자 미제 사건들을 다시 건드리기 시작했다. 시의원 외아들 실종사건도 재수사에 포함됐지만 사실 이 사건의 범인을 찾아낼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아동 실종사건은 실종 이후 3~4일이 지나면 아동이 생존해있을 확률이 높지 않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 그렇게 반복된 하루가 지나게 되자 이 아동의 생사에 대한 궁금 중은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 처음부터 이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 한 명이 끈질기게 이 사건을 추적했고 형사는 결국 범죄지와 범인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어있다. 왜냐하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죽어있었고 그 범죄현장에서 실종아동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들어와 있던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형사 한 명이 분철된 노트 한 권을 건넸다. 그 노트에는 '피고인 진술 증거 no.1 사본'이라고 적혀있었다.
"일단 이거 먼저 읽어봐. 주범의 일기인데... 참 어처구니가 없더군."
파일을 건넨 형사는 고개를 절로 저으면서 범죄현장에 놓인 철제 수술대를 만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2052년 3월 7일.
나는 파산했다. 사실 나는 똑똑한 놈이었다. 가진 놈은 더 가지고 못 가진 놈은 더 가난해지는 이 세상의 원리를 깨닫고 2년 전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원리를 깨닫지 못했거나 알아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반면 나는 깡도 있고 머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못 가진 놈의 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 순조롭던 사업은 무리하게 직원을 늘리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래업체들에 수금을 밀리자 그들은 나를 사기죄로 고소했고 직원들 또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자 노동부에 나를 신고했다. 몇 차례 경찰서와 검찰청을 출입하며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형사, 민사상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파산을 하게 됐다. 이제는 내 명의로 은행거래도 되지 않고 심지어 핸드폰 개통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살아있는 쓰레기일 뿐인 것이다. 그저 길거리에서 술이나 마시고 쓰러져 잠이나 자는 인생. 그런데 얼마 전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나에게 어떤 남자가 5만 원권 지폐를 주머니에 넣어줬다. 그러더니 나더러 돈 좀 벌어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오랜 거리생활에서 나름 터특한 생존 방식 같은 것이 있다. 특히 이런 놈들은 조심해야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돈 얘기부터 꺼내는 놈들. 분명 사람을 물건 따위로 여기며 거래나 하는 그런 놈들일 것이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잘 펴놓은 신문지 위에 눕고 폐박스를 머리까지 덮었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가 가방지퍼를 열어 내 눈앞에 가져다 댔을때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가방 안에는 5만 원권 노란색 지폐가 수백 장이 채워져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나를 다시 대화의 테이플에 앉혀놓기 충분한 숫자였다. 1년에 1억씩, 15년에 15억. 그가 요구는 갓난아기를 납치해서 15년간 양육하는 것. 그리고 절대 그 아이가 자신의 납치 사실을 알아차려선 안되는 것이다.
2059년 2월 27일.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1년에 1억으론 부족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수면교육부터 기저귀 가는 일까지. 하지만 내 수중에 벌써 7억이라는 거금이 들어왔다. 앞으로 8년... 15억. 그 돈이면 빚을 다 갚고도 남는다. 그 아이는 우리가 지어낸 시나리오를 철석같이 믿었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가끔 귀여운 구석도 있다. 아이는 나를 삼촌으로 알고 있다. 납치 후 2년간은 정말 콩팥이 쪼그라드는 거 같았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아이의 납치 사실을 방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세 아이의 존재를 잊었다. 그래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나는 새벽에 문 앞에서 잔다. 경찰에게 잡히게 되면 아마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15억이 아니라 150 억인들 다 무슨 소용이랴.
2060년 4월 8일.
그 의사 놈이 웬 의식 없는 아이를 업고 오두막집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이 미친놈이 아동 연쇄살인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그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난 그저 돈만 받으면 된다. 이건 비즈니스다. 아무리 범죄라지만 비즈니스에는 서로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다. 납치한 아이와 같이 가둬두려고 하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 두 명을 양 육하라 하면 15억으론 모자라다. 아이 하나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의식이 없던 아이는 바로 그 의사 놈의 친자식인데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미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법원에 영장을 신천 했고 법원은 자신의 집에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픈 아이를 들쳐 메고 야반도주한 것이다. 의사라고 대단한지 알았더니만 이 사람의 인생도 참 밑바닥을 기는구나.
2063년 1월 2일.
드디어 이 미친 의사에 계획을 알게 됐다. 그 미친놈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수술대를 오두막에 들여놨다. 이런 미친놈! 지 자식에게 심장을 이식하면 납치한 그 아이는 죽는다는 말이 된다. 두 아이가 12살이 돼야 수술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일주일 후 수술이 진행된다. 드디어 끝나는 것인가. 그런데... 그 아이와 지냈던 기억들이 밤마다 내 가슴을 휘젓는다... 이건 살인이다.
2063년 1월 7일.
방문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다. 이 방은 녹음, 녹화가 되기 때문에 대놓고 도망가라고 할 수는 없다. 어젯밤 의사 놈과 크게 말다툼을 했다. 그 미친놈은 기어이 이 일을 진행할 작정이다. 지 자식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이해는 하지만 납치된 아이도.... 내 자식이나 다름없다.
문도 열어놨고 화를 내보기도 했다. 제발 도망쳐!
2063년 1월 8일.
결국 오늘 밤 그 의사 놈을 죽이기로 했다.
이 아이를 살릴 방법은 그것뿐이다...
형사가 노트를 덮으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읽으면서 얼마나 노트를 꽉 지고 있었는지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미친것들이... 그런데, 그 이후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사건 현장에는 수술대에 누워 죽어있는 한 아이와 성인 남성 두 명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죽어있는 아이는 의사의 아들인 거 같고, 두 남자는 그 미친 납치범들이겠지. 둘이 몸싸움을 벌인 모양이야. 그러다 서로 총격전으로 번진 거고. 감식반이 DNA 채취해갔으니까 곧 신원이 밝혀질 거야."
"그러면 납치된 아이는요? 우리는 사실 그 아이를 찾으러 온 거잖아요."
나이 든 형사가 현관문 쪽을 쳐다봤다.
"납치된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현관까지는 발견됐는데, 희한하게 그다음 발자국이 없단 말이지."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갑자기 아이가 하늘로 솟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젊은 형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야. 일단 이 주변부터 탐문 시작하고 작은 거라도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다 보고해."
나이 든 형사가 걸음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현장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젊은 형사를 쳐다봤다.
"그런데 자네 말이야."
"네?"
"아무리 실내라고 하지만 되도록 방호복은 벗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나?"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고 범인은 잡았으나 피해자는 찾지 못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한적한 산 문턱에 범인이 묻혀있는 곳 비석에는 오늘도 하얀 국화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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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그 국화는 자신의 몸체를 진동하듯 부르르 떠는가 싶더니,
아주 천천히...공중으로 떠올랐다.
김도영 소설집 [단편 달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