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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Nov 24. 2022

교도소의 잠 못이루는 밤

교도소의 여름

 전날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을 떴다.

분명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뿐인데, 시곗바늘은 벌써 새벽 5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베개밑에 넣어놨던 휴대전화를 집었다.


-금일 수용자간 폭행사고 예방교육있습니다. 출근 후 근무지 투입 전에 교육실에 모여주세요.


매일 똑같은 하루와 하루가 이어지다보니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겨우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듬뿍 눌러 발랐다. 오늘도 노란 우비를 입은 기상캐스터가 산발적인 소낙비가 예상된다는 소식을 전한다. 최근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습해진 공기처럼 내 마음도 덩달아 눅눅해진다. 이런 날씨에는 특히 교도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사실 나 말고도 아마 대다수의 직장인은 기후의 변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나 전쟁의 위협보다 당장의 출근이 더 부담으로 와닿지 않을까싶다. 불이꺼진 거실엔 아내와 아이가 잠을 자고있다. 요즘들어 잠투정이 심해진 아이를 토닥이느라 긴 새벽을 보냈을 아내를 보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달에만 벌써 일곱번째 밤샘근무다. 내일 아침 퇴근 후에나 볼수있는 아이를 한동안 눈에 담고 나서 현관문을 나선다.


교도소 복도에 들어서면 일정한 간격으로 철문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방 한곳 한곳을 둘러보며 천천히 복도를 걷는다. 몇몇은 오셨냐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저마다의 표정은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한맺힌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앉아있고 누군가는 가지않는 시간에 괴로워 눈을 감고있다. 또 누군가는 이곳이 자신의 집인마냥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매번 느끼지만 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을 홀로 받아내는 일도 쉽지 많은 않다.


-저기요, 잠시만요.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


이제 막 다섯걸음을 옮겼을 뿐이지만 여기저기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혼자 백명이 넘는 사람들 한명, 한명의 모든 이야기를 복도에 서있는채로 하염없이 들어주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절차가 있고 순서가 있다. 이건 말도 안돼는 근무환경이라며 오히려 교도관을 염려하는 수용자들도 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아침에 봤던 교도관이 그날 저녁에도 있고,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서 화장실에 갈때도 창살밖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에 기상해서 이부자리를 정리할때도 똑같은 교도관이 자신의 앞에 서있으니 깜짝 놀라는 수용자들도 있다. '집에는 언제들어가세요? 같이 징역사는 것도 아니고.'라고 걱정해주는 수용자들의 말에 씁쓸하다. 도대체 언제쯤 인력이 정상화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반대로 욕설과 협박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 출현한다는 것이 문제다. 직원 고소는 그런 사람들이 즐겨찾는 제일 실용적인 수단이다. 담당실에 도착하니 오늘도 내 책상엔 '인권위원회에 보냄.' 이라는 편지봉투와 누군가의 '고소장'이 올려져있다.


-개인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옷을 벗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쳐다봐 성적 수치심을 느낀 점.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여 강제로 타인의 신체를 더듬어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는 점.

-취침을 방해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한 점.


고소의 내용 한구절, 한구절에는 대한민국 헌법,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몇조 몇항의 부분까지 적혀있다. 그런 사람들은 방안에서 하루종일 법을 공부한다. 법에 관련된 책이 방 한구석에 수북히 쌓여있다. 이곳은 형광펜으로도 칼날을 만들고 건전지를 부딪혀 불을 일으키는 곳이다. 몇가지 반찬만 있으면 잘 숙성된 술을 만든다. 화투패의 그 세세한 주름까지 그려내고 '홍단'의 날리는 글씨체와 붉은 꽃잎을 눈앞에서 보고도 '어떻게 이곳에 화투패를 들고 들어왔지?'라며 그 정교한 솜씨에 내 눈을 의심한적도 있다. 예전 선배들은 부품 몇개만 갖다주어도 헬리콥터를 만들고 탈출하려는 사람도 있을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책상위에 놓여진 고소의 내용은 전부 '그런 불법으로 제작한 작은 칼이나 부정물품들이 있는지 실시하는 검사'와 '순찰'을 도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무차별적인 고소가 들어가면 교도관은 조사를 받아야 한다. 고소와 재판에 익숙한 그들은 이런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번엔 독방이 나열되어있는 복도쪽으로 몸을 틀었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시도를 했다가 살아남은 남자가 독방에 앉아 TV를 보고있다. 불과 얼마전만해도 자신의 가족들과 거실에 앉아 TV를 봤을텐데, 영문도 모른채 세상을 떠난 그의 아이들은 내 아이와 또래였다. 나도 교도관이기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끔찍하게 아동을 살해한 자들과 마주보고 대화를 할때, 내가 교도관임을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종교인과 철학자는 속세에서 벗어나 자신을 깍는 열반의 경지를 수행하지만, 교도관은 속세의 가장 한 가운데, 그것도 본능과 질투, 욕심, 갈등과 죽음의 냄새가 아직 손에 묻어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수행아닌 수행을 해야한다. 내 속내를 드러내면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뜨거운 열기를 걷어내고 고요한 내심을 유지하는 상태. 처음 교도관으로 임용됐을때부터 지금까지 그 부분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의 옆방에 수감되어있는 사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두돌된 아기를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방치한채 며칠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다 구속된 자다.  


그들의 방에서 고개를 돌려 창살밖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교도소 창살을 통해 들려오는 빗소리가 잠시 멈춘 그 공간에, 잠시 쉴틈도 없이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새치기 하듯 그 자리를 채웠다. 나는 어떻게 그들과 대화해야 할까. 교도소 복도 끝까지 늘어서있는 독방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연들이 존재한다. 오늘도 나는 교도소의 방 앞을 걸으며 귀로 듣고, 철문에 손을 대보며 창살에 얼굴을 붙여 그들을 바라본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Friedrich Nietzsche  『선악의 저편』-


그들과 나는 매일 서로를 마주본다. 어떻게 그들을 마주해야 할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건 그들 역시도, 매일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내 표정을 똑같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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