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들어간 심리상담사(Q에 대하여) 3화.
* 본 내용은 저자의 실제 경험을 기록했지만, 개인정보보호, 보안유지를 위해 일부(이름, 명칭 등)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교도관들은 어떤 일을 할까요?”
지역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인문학 강연 『길 위의 인문학: 다시 돌아오는 그들』의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수십 명의 청중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단 위에 서 있는 나는 언제나처럼 이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때 한 중년 남성이 손을 들었다.
“감시하고 가두는 일 아닌가요? 범죄자들이 탈옥하지 못하게 막고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도소를 격리시설로만 생각한다. 죄지은 사람들을 가두는 창고 같은 곳으로 말이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어갔다.
“교도소에는 범죄인의 심리를 마주하는 요원들이 있습니다. 범죄인을 프로파일링하고 심리검사 및 분석하여 변화시키려는 전문 인력들이 교도소 현장에 서 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몇몇 사람들이 관심 있는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떤 이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마약 중독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마냥 가둬두기만 하면 될까요? 출소 후에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인지행동치료, 동기강화상담 같은 전문적인 치료 기법을 활용합니다. CBT와 MI라고 부르는 이런 방법들을 통해 중독자들의 사고패턴을 바꾸고, 변화에 대한 동기를 끌어내는 거죠.”
강연을 마친 그다음 날, 나는 상담사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 방문하는 상담실이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다.
“법무부에서 여러 심리학회들과 협약해서 자격 과정을 개설했었어요. 저희 기관에서는 제가 자격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요.”
나는 교정시설 심리치료팀 Psychology Correction Team에 소속된 범죄심리교정요원이다. 범죄인의 심리를 교정한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우리 팀은 겨우 4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교도소에서는 ‘별난 일 하는 사람들’ 정도로 여겨졌다.
“중독심리사 자격 슈퍼바이저셨군요.”
“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김선영이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린 건 그 자격과정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였다. 3년 차 교도관으로 명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특별채용으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선배님, 질문이 있어서 왔어요.”
그녀의 눈빛은 반짝였다. 손에는 두툼한 전공 서적을 들고 있었다. Aaron Beck의 인지치료 이론부터 William Miller의 동기강화상담 매뉴얼이 기록된 책이었다.
“CBT와 MI를 현장에 적용할 때, 어떤 점들을 주의해야 할까요? 논문들을 보면 효과성이 입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나는 그녀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배웠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 '치료'와 '회복'은 당연한 개념이었다.
“선영아, 이론과 현실은 좀 다를 수 있어. 특히 교도소라는 공간에서는... ”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박지웅 교도관이 들어왔다. 18년 차 베테랑으로 키 180센티미터의 건장한 체격, 언제나 다림질이 완벽하게 된 제복을 입고 있었다. 수감자들이 '철벽'이라고 부를 정도로 원칙주의자였다.
“또 상담인지, 치료인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섞여 있었다.
“무슨 마약쟁이들 상담해 준다고 변하겠어요? 차라리 그 예산들을 모아서 교도소를 더 짓는 게 낫지 않겠어요?”
김선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박선배는 C동 1 구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강력범죄사범들이 수용된 곳으로 매일 같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관리하는 구역만큼은 유독 조용했다.
“선배님,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료 기법들이에요.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과학? 내가 18년 동안 현장에서 구른 게 책 몇 권 읽은 거보다 못하다는 거야? 내가 마약중독자들 그동안 몇 천명을 봤는지 알아? 그 책 쓴 사람들이 마약중독자들을 보긴 봤어?”
난 당시 냉랭했던 사무실 분위기를 떠올렸다.
“박 선배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에요. 18년간 지각 한 번 없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체육교육과 출신에 군 복무까지 했죠.”
박 교도관은 그 무게를 18년간 견뎌왔다. 매일 같이 들어오는 새로운 얼굴들,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똑같은 이야기들. “이번엔 정말 잘살겠습니다.” “다시는 안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얼굴이 다시 나타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장 경험이 많으신 분이군요.”
“네, 교도관 1인당 담당 수감자가 100명이 넘거든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그런 상황에서 18년을 버텨온 거예요.”
그것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단단해지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겠지.
“결국 충돌하게 되셨나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C동에서 마약 중독자와의 CBT 상담이었는데...”
그날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상담실에서 김선영은 준비해 온 CBT 워크시트를 꺼냈다. 자동적 사고 기록지, 인지 왜곡 체크리스트, 대처 기술 연습지. 그녀는 대학에서 배운 대로, 논문에서 읽은 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마약 수감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김선영이 열심히 설명하는 인지 왜곡의 종류들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상담이 끝난 후 복도에서 세 사람이 모였다.
“정말 아픈 사람 같아요.” 김선영의 목소리에는 동정이 섞여 있었다.
“CBT로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동기가 부족해 보여요. MI 기법을 병행해야겠어요. 현재 본인 스스로도 재활 의지가 약한 거 같아요.”
“아프긴 아프지.” 박 교도관의 대답은 건조했다.
“그런데 아프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저 사람이 마약 팔아서 망가뜨린 다른 사람들은 생각 안 해?”
두 개의 진실이 충돌하고 있었다. 김선영에게는 재활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박 교도관에게는 범죄자였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결국 우리 모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됐어요.”
“어떤...?”
함께 고민하던 상담사는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인간의 변화는 심리개입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질서와 규율을 지키고, 인내하고 타인에 대해 양보하는 것, 공동체 생활과 노동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모두 융,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들은 직업훈련을 하고 진로 안내를 받는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규율을 어기면 징벌을 받기도 한다. 교도소는 하나의 사회처럼 돌아간다. 교회도 있고, 노동의 가치를 느끼는 보조 역할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잘 연계되어 진행되어야 한 사람의 환경과 인지와 내면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날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생각했다. 창밖으로 교도소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높은 담장 위 철조망을 달빛이 비쳤고, 진한 어둠과 밝은 조명이 서로 어우러져있었다.
다음날 나는 김선영을 불렀다.
“선영아, 어제 박 선배 말씀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치료를 왜 거부하시는지.”
“그런데 선배 말씀에도 일리가 있어. 규율이나 질서는 말이야.”
나는 김선영에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상담기법 CBT나 MI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규율을 어긴 수감자들에게는 명확한 경계와 일관된 원칙도 지켜나가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선영아, 한 번 생각해 봐. 마약 중독자가 상담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교도소 안에서 규칙을 어기고 다른 수감자들과 싸운다면? 상담의 효과가 있을까?”
김선영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박 선배 같은 분들이 만든 질서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CBT를 받는다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선영은 첫 번째 폭력 사건을 목격했다. C동에서 마약중독자들이 자신들에게 수면제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관에서 폭행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교도관 한 명이 부상을 당했다. 동료가 수용자에게 목을 졸리는 모습을 본 그녀는 그날 화장실에서 울었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인지행동치료 CBT 워크시트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과 동기강화 MI 기법으로는 끌어낼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의지는 그녀가 믿었던 과학적 치료의 한계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줬어요?”
상담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더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죠.”
박 교도관이 변한 건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가 담당하던 구역에서 6개월간 모범적으로 생활하던 수감자가 갑자기 자해를 시도한 것이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내면의 고통은 깊었다.
“왜 그랬을까요?” 김선영이 박 교도관에게 물었다.
“모르겠어. 말썽 한 번 안 피우고 잘 지냈는데...”
“심리상담을 받았다면 달랐을지도 몰라요. 내면의 우울감이나 절망감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박 교도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살이나 자해 같은 심리적 문제는 규율이나 질서확립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계속 가둬져만 있던 수감자들의 분노가 치솟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박 교도관도 혼자서 규율과 질서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관리할 수는 없었다. 18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100명이 넘는 수감자들의 내면까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요즘 사고가 너무 많아졌어.” 박 교도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김선영의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감자들은 상담을 받는 동안 사고를 치지 않았다. 상담받을 자격을 잃을까 봐 조심스러워했던 것이다.
“상담받는 놈들은 얌전하네.” 박 교도관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상담을 받기 위해서라도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때 박 교도관은 깨달았다고 한다. ‘상담이라는 것이 결국 수용생활 안정으로도 연결되는구나.’
김선영도 변했다. 어느 날 그녀가 상담하던 중독자가 다른 수감자와 심각한 다툼을 벌인 것이다. 6개월간의 중독재활상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보였다.
“상담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김선영이 나에게 말했다. “생활 자체가 안정되어야 치료 효과도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으신 거군요.”
“네, 어느 날 두 사람이 복도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걸 봤어요. 예전 같은 적대감은 사라져 있었어요.”
같은 고민이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시 이곳에 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박 교도관은 엄격한 규율을 통해서, 김선영은 과학적인 치료 기법을 통해서,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의 목표는 같았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융복합이죠. 박 선배가 만든 안정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김선영이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하는. 그런 식으로 협력하고 있어요.”
교정의 세계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떤 하나의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규율도 필요하고, 치료도 필요하다. 질서도 필요하고, 재활도 필요하다.
“완벽한 해답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서로 다른 접근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해요.”
상담사가 펜을 내려놓았다.
“교정은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마치 저 빗물이 다시 구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언젠가 다시 비가 되어 내리듯이. 우리 일도 그래요. 끝없이 순환하고, 반복되고 계속되죠.”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간다.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상담사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그것이 전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