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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Aug 02. 2024

복숭아 알레르기

01

그 아이를 처음 봤던 날.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 새순이 돋아나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이라는 사실 밖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스며들 줄이야. 너는 참 복숭아 같아. 날 위태롭게 만들지만 또 향기롭고 유혹적이니까 말이야.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긴 터널의 끝을 지나 새로운 길이 나를 맞이하고 있던 때. 그때의 난 시작이라는 설렘과 두려움이 또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단 이 감정들은 미뤄두기로 했다.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무형의 압박은 사라졌으니.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로운가? 고요함 속에서 마음껏 춤을 춰야지. 그렇게 난 가만히 누워 멍하니 있다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또 일어나서 겨울 느낌이 물씬 나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은은하게 반짝이는 트리를 만들고 각종 모양의 쿠키를 구우며 하루를 온전히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아닌 연초가 되어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지인들의 문자 그리고 가족과 함께 먹는 떡국.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가벼운 궁금증과 함께 1월을 보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난 입학까지 일주일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 크게 말하자면 이 두 가지의 감정들을 마주했는데 바로 운명의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설렘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운명의 사람이란 건 흔히 연인일 수 있지만 정말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이다. 흔히 말해 영혼의 단짝.) 설렘보단 확실히 두려움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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