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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Sep 06. 2024

유(有)에서 무(無)

06

혜원이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혹시… ’유리병 편지‘ 있잖아, 디자인 수정해 줄 수 있어? “ ”아까 선배랑 이야기해 봤는데 조금 화려하게 색감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대답했다. ”아 그래? 음 괜찮아! 그럼 가시 손을 봐야겠다. “ 나는 이때 약간의 의문이 들긴 했다. 분명 지난번 연극 콘셉트 기획 회의 때 ’유리병 편지‘는 단조롭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연출하여 무(無)에서 오는 미스터리함이 강조되었는데. “청아야, 그리고 내가 아까 태경선배한테 미리 말했더니 네가 온전히 소품을 다시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대.” “책임을 가지고.” 혜원이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선배에게도 말했다는 사실에 한치의 의구심조차 사라졌다. ”휴…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연극의 핵심을 내가 도맡아 준비한다니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학교생활, 공부, 미래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가서 종이에 ‘유리병 편지’의 도안을 그려보았다. 보라색과 파란색 물감을 군데군데 발라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 은색 빛깔의 반짝이는 가루까지 솔솔 뿌려서. 그리고 반질반질하게 광택 바니쉬를 발라 마무리해야지. 전반적인 구상을 마친 뒤 나는 벌써 완성한 듯한 뿌듯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긴 하루였다. 그렇지만 행복도 길었다. 다음 날, 금요일 아침 피곤했는지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준비하고 등교했다.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금요일의 5,6교시는 창체시간이었다. 그 말인 즉,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인 것이다. 3교시를 마친 후 쉬는 시간에 혜원이가 물었다. ”어떻게 준비는 잘 되어 가?“ ”기대된다.“ ”나 어제 도안 그리다가 기절하고 늦잠 잤잖아 하하. “ 나는 답했다. 이날도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소극장에 가서 ‘유리병 편지’를 따로 챙겨 왔다. 그리고 가방에 소중히 넣었다. 창체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우리는 ‘울림’으로 향했다. 대본은 완성되었고 이수, 도학 그리고 지웅이는 연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선배와 장면 별 조명 연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핀 조명과 다채로운 배경 조명. 또한 푸른빛으로 바다를 연상할 수 있도록 연출해 보았다. 나는 공연 당일 조명을 직접 담당할 예정이라 더욱 신경 썼다. 때에 맞춰 색을 바꾸고 위치를 조정하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 도학이는 말했다. ”이야… 우리 조명 담당 잘 부탁드려요. “ 능청맞게 답했다. ”네, 아주 번쩍번쩍 빛이 나는 우리 배우님. “ ”하하“ 도학이는 참 웃긴 친구였다. ‘분위기 메이커’ 라는 말이 찰떡이다. 이수는 카리스마 있는 친구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냈다. 지웅이는 애교쟁이였다. 순간 나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연이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솔이 선배가 그때 ” 조연출 윤청아, 편지 소품은 잘 만들고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 연극 준비는 문제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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