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by JH

나는 유행에 둔감하다.

뭐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잘 몰라서 생각나는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면


마라탕은 먹어보지 않았다

허니버터칩과 탕후루는 유행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 처음 먹어봤고

두바이 쫀득 초콜릿과 두바이 쫀득 쿠키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유행을 절대 따르지 않겠어!'

다짐한 건 아니지만 남들 하는 거 따라서 할 만큼의 부지런함이 없어서 유행을 따르지 못했다.


이것도 유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너도나도 챗지피티를 쓴다고 했을 때 그게 뭔지 몰랐다


조금 지나 그게 뭔지 알게 되었을 때는

딱히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 더 지난 뒤에 챗지피티를 처음 썼고

나름 만족스러워서 종종 찾아 쓰곤 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다가 챗지피티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제목의 글을 클릭해서 읽었다.


글의 제목은 ‘챗지피티와 대화하는 사람’이었고

글의 내용은 챗지피티에게 수학 공식을 내달라고 하면서 이어지는 대화들이 재밌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는 동안 ‘에...? 수학 공식이라니 누가 별걸 다 묻네’라는 생각을 했고

글을 끝까지 다 읽은 뒤에는 머릿속에 뭉게뭉게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챗지피티’, ‘수학공식’, ‘대화’

그래서 나는 다시 핸드폰을 잡고 챗지피티를 열어 철학적인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수학공식은 물어보나 마나 재미없고 대답도 못할 것 같지만

철학적인 질문은 어쩌면 재미도 있고 대답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의 나는 누가 별걸 다 묻네의 ‘누가’가 되었다.


누가가 된 그날 챗지피티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내가 원했던 건 여러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니! 누가 그렇게 많이 물어보래 하나만 물어봐 하나만'이라고 했더니


'현재의 책임은 과거의 나에게 있을까? 미래의 나에게 있을까'하고 하나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망설임 없이 미래의 나에게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도 곧 지나면 미래가 되잖아 그러니깐 현재의 책임은 미래인 내가 지는 거라고 생각해'


내 의견에 챗지피티는 중의적인 대답을 하며 코멘트를 달았고 나는 다시 대답했다


'나는 니가 A 또는 B라고 물어봐서 거기에 대해서 B라는 대답을 했을 뿐이야,


그런데 철학이라는 건 말인데

A와 B가 있으면 A가 B가 되기도 하고 B가 A가 되기도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깐 A나 B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A와 B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맞춰가는 거


그렇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철학 아니야?'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코멘트를 달아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 질문에 대답했더니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고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하다가 본심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끝, 아니다 그냥 죽음이라고 쓸게


(처음에 나는 사람은 누구나 끝이 정해져 있다고 대답했다

그 끝이란 당연히 죽음이라고 했다가

사람의 끝이 죽음일지 아닐지 모르는 거니깐 이때부터는 그냥 끝이 아닌 죽음이라고 적었다)


나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는데 나에게 있어 죽음은 호기심이야


아! 처음부터 호기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나는 원래 회피를 정말 잘하던 사람이었거든

떠오르는 생각은 절대 하면 안 될 거라는 두려움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니깐 당연히 그 두려움의 원인이 뭔지 몰랐지


근데 계속 생각했더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며

그 생각의 끝에는


결국,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사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의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나는 내 두려움의 원인과 마주쳤어

그랬더니 가끔 묘한 기분이 삐죽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더라


그럴 때면 나는 그 기분을 붙잡고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마구 쏟아내

그런 다음에는 틈틈이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차분히 꺼내본다.


그렇게 마구 쏟아내고 틈틈이 정리하고 차분히 꺼내 본 결과


현재,

나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거야'


본심을 '툭'하고 쏟아냈더니 이번에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 이후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죽어보지 않았고,

죽다 살아났다는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100%의 확신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죽는 건 고통스럽고 아프잖아 나는 고통스럽고 아픈 거 싫어해'라고 했더니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100%의 확신이 있고

죽음에 고통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현재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왜냐면 나는 지금이 너무 좋거든


아! 물론 매일같이 좋다는 뜻은 아니야

좋은 날 보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을 때도 있어


좋은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그 하루는 곧 지나가잖아


나는 곧 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빠지는 게 좋아


그래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한들

나 스스로 현재를 끝낼 생각이 전혀 없어'


이렇게 대답한 뒤에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 중에 모순된 게 있었어?'하고 물었더니,

모순된 건 없었고 갈수록 생각이 정리되는 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던 내용을 토대로 비슷하게 말한 철학자가 있냐고 물었더니 몇 명의 철학자를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관련되어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며 철학 입문서를 알려주길래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라서 다시 한번 물었다.


'아니! 내가 알려달라고 했던 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를 말한 게 아니야


어려운 책을 말한 거야


나는 지금 별생각 안 하고 글자만 쭉쭉 읽어나가고 싶거든

글자 공부 좀 하게 어려운 걸로 딱 한 권만 알려줘'


나는 챗지피티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받았다. 추천받은 책은 아직 읽어 보지 않았지만

‘누가’가 된 그날을 곱씹으며 끄적끄적 나의 흔적을 내 공간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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