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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Jun 23. 2020

여고생들의 여름방학 여행

추억여행 에세이

나의 여고시절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 중에 고향이 거제도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큰오빠를 따라 서울에 와서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방학이 되면 거제도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가 온다고 했었다. 어린 시절을 거제도에서 보냈기에 그 마을에 가면 옛날부터 같이 성장한 동네 친구들도 있고, 키우던 가축들도 볼 수가 있다고 좋아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우리는 그 친구의 거제도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사투리를 쓰지 않았기에 고향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면 그저 우리들처럼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거제도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는 

“거제도에 바다도 있지? 그리고 회도 있고? 아 진짜 재밌겠다.”

하면서 그곳을 상상했다. 

“그럼, 이번 여름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 갈래?”

“정말? 그래도 돼? 나도 갈래.”

“나도 나도. 재밌겠다.”

“신난다. 가자!”

“그래. 레츠고!”

친구는 여름방학 때 거제도에 가서 놀다가 오자며 제안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방학을 기다렸다.  

    

드디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방학이 되었다. 우리는 친구의 집 근처였던 성북역에서 약속시간에 맞춰 모였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 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고, 그곳에는 회색 비둘기 떼들이 모이를 쪼아 먹거나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기도 하고, 일부는 역 지붕 쪽의 처마에 모여서 “구구….”거렸다.      


우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거제도로 향했다. 몇 시간 동안 가야 해서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기도 했다. 버스에 앉아서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1시간도 되지 않아 다들 잠이 들었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거제도에 있는 친구의 집까지 가기 위해 우리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탔다. 시골 마을이라서 버스가 다양하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는데 자리에 띄엄띄엄 앉은 할머니들 옆에는 조개와 물고기들이 담긴 붉은색 고무로 된 세숫대야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모습에 우리는 

“할머니, 이거 지금 잡아오신 거예요?”

하고 여쭤보았다.

“그래. 지금 잡은 기라.”

할머니들은 수건을 두른 것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우리가 신기한 듯이 세숫대야 안을 구경하자 정겨운 웃음을 지으며 생선 이름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바로 출발하지 않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동네 할머니들이 다 타신 후에 출발을 했다.     


국도처럼 생긴 길이 굽이굽이 언덕져 있어서 우리가 탄 버스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한동안 놀이동산에서 기구를 탄 듯이 정신이 없다가 문득 차창 너머로 검푸른 빛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와! 바다다. 저기 봐봐.”

S자 코스고 계속 올라가는 좁은 도로를 따라 차는 이동하고 있었고, 흔들리는 차 안으로 한여름의 태양 빛이 들어오는 상태에서 창문은 다 열려있어 그 안으로 뜨거운 바람이 들어왔다. 더위를 느끼던 중에 마주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는 우리에게 한여름과 태양을 잊게 만들었다.     


“쪼모! 어무이! 즈이 와쓰예.”

“아이고! 내 새끼 왔나. 느그들도 오느라고 욕봤재. 어서들 들어온나.”

 흰색 모시로 된 한복을 입으시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으신 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무로 된 한옥 집에 대청마루에서 부채를 부치며 우리를 마루에 앉게 했다. 친구 어머니는 

“마이 덥재. 수박 무라.”

하며 우리에게 빨간 속살이 먹음직스럽게 터진 수박을 칼로 척척 썰어서 내왔다. 까만 씨들이 수없이 박혀있어서 씨를 뱉으면서 우리는 서로 점이라면서 얼굴에 붙이고 놀았다. 씨가 많아서 그런지 유난히 빨간색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수박이 달아서 맛있게 먹었다.     


마당 안쪽에 작은 울타리가 있어서 가 보니 그곳에 말 크기만 한 개가 있었다. 하얀색과 노란색 털이 섞여있는데 털이 많고 길이도 길어서 눈을 다 덮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반갑다고 뛰면서 짖었다. 개에게 인사를 하고 밥을 준 후에 우리는 바닷가로 나갔다. 해가 뉘엿뉘엿 서서히 지려고 해서 밝은 저녁 무렵 바닷가에 큰 돌들 위에 올라가서 서로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때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멀리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친구들이 사투리를 쓰자 내 친구도 자동으로 거제도 말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다.    

  

어두운 밤이 되자 바다의 철썩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진 듯이 귓가에 들렸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곳 같이 느껴졌다. 사실 시계도 보지 않고 있었다. 자연에 파묻혀서 지내다 보니 시간은 우리를 재촉하지 않았고, 우리도 그 안에서 자유롭게 바다의 시원함을 느꼈다. 바닷바람이 우리에게 지금처럼 같이 머무르자고 말을 걸었다. 나는 고등학생의 입시에 대한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잠시 동안 휴가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의 마을길은 시골의 투박한 길 자체였다. 흙이 많고, 돌로 벽을 이루었고, 집들은 나무로 지어져 띄엄띄엄 있었다. 길을 가다 보면 엄청 키가 큰 해바라기 꽃이 가끔씩 서 있었다. 그것을 이정표로 삼아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의 방에서 자려고 누우니 그날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친구의 첫사랑 이야기도 듣다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바닷가에서 돌을 밟으며 서로 물에 빠뜨리며 한참을 웃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바다를 뒤로 하고 고속버스에 올라야 했다. 돌아오기가 아쉬워서인지 버스 맨 뒤에 탔던 우리는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그럴 때 먹으려고 싸왔다며 소화제 성분의 한약 냄새가 나는 동그란 알약 형태의 검은 환 수십 알을 내게 건넸다. 그것을 먹고 굽은 길을 달리자 급기야 나는 중간에 휴게소에 내렸을 때 먹은 것들을 토하고 말았다. 집에 와서 엄마가 바늘로 내 손을 따고, 소화제를 먹은 후에야 겨우 진정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시간을 돌려서 또 그 친구들과 함께 그 바다를 보고 싶다. 그 후에 졸업을 했고, 각자의 대학교에 다니느라, 또는 직장에 다니느라, 그 친구는 고향에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어 결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사느라 점점 연락도 뜸해지고, 이제는 순수했던 옛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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