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감상
주말이 되어 엄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은 인천 영종도에 갔다. 인천의 바다가 탁 트여 마음에 쌓여있던 것들이 바다 위 수평선 너머로 떠나갔다. 그곳엔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싹이 움트는 봄이 오기를 예고하는 날카롭지 않은 바람이 바닷가 길에 불어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바다를 비춰와 쭉 뻗은 바닷물이 빛의 각도에 따라 움직이며 반짝였다. 철썩거리는 물결이 흙 위에 서 있던 내 쪽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또 망망대해를 향해 나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해변 안으로 물이 뻗어 들어왔다. 물이 들어왔다 빠져나갈 때 고운 흙 위에 바닷물이 가져온 작은 소라, 조개껍데기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 크고 작게 빛이 나서 이미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였지만 언뜻 보석처럼 보였다. 파도에 수차례 깎여 매끄럽고, 둥글게 된 돌들을 주웠더니 느낌이 부드러웠다. 납작한 돌을 골라서 바다에 던지며 물수제비를 했다. 손을 떠난 돌이 퐁퐁퐁 물 위를 가볍게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해변을 걷다가 근처 카페로 갔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나와 나무로 된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바다의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있으니 멀리서 갈매기의 모습도 보였다. 엄마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케이크에 초를 꽂아 조용한 목소리로 축하노래를 불렀다. 몸이 좋지 않아 투병 중인 엄마의 독한 약 부작용으로 부은 얼굴에서 간신히 지어 보인 미소를 보았다.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조개와 전복, 낙지 등이 우러난 국물을 떠먹으니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듯했다. 음식에서 바다의 향을 느끼고 기분 좋게 주차장을 나섰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달리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는데 일단은 받았다. 어떤 중년 남성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는 영종도에 있는 한 파출소의 경찰이라고 밝혔다. 아버지 차번호로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했다. 조금 전 피해차량 주인이 파출소에 신고를 했는데 해물칼국수 가게 주차장에서 찍힌 블랙박스를 증거로 제출한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주차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후진을 하면서 도로를 지나가던 차량과 살짝 스쳤던 모양이었다. 닿을 정도인지는 몰라서 그 운전자를 향해 아버지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고 했다. 파출소의 경찰은 아버지에게 상대방의 블랙박스에서 손 흔드는 장면도 나왔다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상대방의 차주인은 30대 정도의 남성이었고 차량은 외제차였다. 요즘은 외제차를 도로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차량은 특히나 가장 흔하게 다니는 모델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주차장을 거친 후 찜찜한 마음에 한적한 곳에 세워서 확인을 해보니 아버지 차와 스친 자국을 발견했고, 블랙박스에 찍힌 것을 그 근처 파출소에 제출하면서 신고를 한 것이었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 차량만의 사건이니 경찰은 서로 좋게 해결하라며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내용을 듣고 나니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니 상대방은 더 놀라고, 차에 난 스크래치 자국으로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상대방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바닷가에 놀러 와 즐거웠을 텐데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서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다행히 상대방도 당황하기는 했지만 웃으면서 사과를 받아주고, 보험처리를 하기로 했다. 아까 전화 왔던 경찰이 당부해준 대로 보험처리를 하기로 했고, 그의 말대로 보험회사에 접수된 접수번호를 다시 그 경찰에게 알려주면서 일이 일단락 지어졌다. 아버지는 자기 때문에 기분 좋았던 엄마 생일에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며 민망해했다. 그리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내 아버지는 아무 일 아니라며 좋게 처리하면 된다고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그가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이 처리되고 난 후에 수화기 종료 버튼을 누르는 아버지의 손을 봤는데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는 내게 큰 나무처럼 항상 가족들을 지켜주고 지탱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아버지도 나처럼 당황하고 긴장할 때가 있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왠지 내가 이제는 아버지를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하더니 묵직한 느낌이 아래쪽으로 쿵 떨어지는 듯했다. 떨고 있는데 아닌 척하려는 아버지가 너무 약해 보이고 불쌍했다.
생각해보니 옛날에 이와 비슷한 일로 어떤 택시기사가 아버지를 경찰서에 신고해서 뺑소니범으로 몰았던 일이 기억났다.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연락받고 경찰서에 갔더니 다짜고짜 택시기사와 경찰이 아버지를 구속시키려고 했었다. 나중에 엄마가 경찰서에 가서 증거를 확인하자고 해서 어렵게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 서로 차에 손상된 부분을 조사하면서 두 차 모두 아무 이상이 없었고, 영상에도 잘못된 것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야 겨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하마터면 그 택시기사의 진술만을 증거로 고역을 치를 뻔했던 그때의 기억이 아버지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계속 예전처럼 건강하고 정신력도 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최근 몇 해 사이 부모님은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 큰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일을 겪으면서 예전 같지 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속상하고 그들이 얼른 낫기만을 바랐다. 옆에서 힘이 되어주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했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아직도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걱정시킬 때가 많고, 철없는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자식인 것 같아서 새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앞으로는 부모님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나에게 편하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주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