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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Nov 20. 2024

요즘 중학생의 알람은 힙하더라

청소년의 말을 기록하다

8시, 중학생들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이들의 눈은 호빵처럼 부풀어 있고, 걸음은 문어처럼 흐느적거린다.

“선생님, 너무 졸려요.”

“졸리지?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애썼어.”

중학교에서 독서토론이 있는 날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의 시간을 조율하기 어려워 아침 8시 영어 교실에 모여 토론한다. 수업이 끝나고 모여 떡볶이를 먹으며 책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이들은 학원을 가느라 바빴다.


      

한 친구가 아침을 먹지 못했다며 빵을 먹으며 해도 되냐고 물었다.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금씩 먹으라고 했다. 오늘의 토론 책은 <곰씨의 의자>였다. 중학생에게 그림책을 읽으라고 하다니 수준이 맞지 않지 않냐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었고,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으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좋다고도 있었다. 독서토론을 하며 한 가지의 상황에도 아이들의 생각이 다른 걸 알 수 있었다.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어른이 된 내가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일은 생각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큼 달콤해서 책 토론 시간이 좋았다.     

독서 모임의 질문 중 ‘토끼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나요?’가 있었다.

“영어 학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버스가 도착하려면 1분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제게 길을 물었어요. 잠깐 고민했지만, 직접 함께 걸어가서 안내해 드린 적이 있어요.”

“학원 버스는 탔나요?”     

학생이 담을 하려던 순간,


“또로로로로롤”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렸다. 한 학생의 알람 소리였다. 알람 소리가 특이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쇼츠를 보다가 그의 알람 소리가 마음에 들었단다. 그 음원을 따서 자신의 알람 소리로 저장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저는 알람으로 엄마 목소리를 저장해서 그걸로 깨요.”

핸드폰에 있는 알람만 사용하는 나는 아이들의 알람의 세계에 호기심이 생겼다.

“중학생들은 알람을 직접 커스텀마이스하는구나. 그럼 새소리도 녹음하면 좋겠다.”

“(동시에) 그럼 못 일어나요.”

재밌는 샛길 대화가 시작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일어나는 방법도 궁금해졌다.

“00이의 알람은 뭐에요?”

“저는 개 짖는 소리요. 잠이 번쩍 깨요. 재밌는 건, 제 알람이 울리면 옆집 개도 같이 짖어요.”

“진짜? 소리가 정말 리얼한가보다.”

“저는 알람 13개 맞춰 놔요.”

“13개나? 몇 개가 울렸을 즘 일어나요?”

“다 울려도 못 일어나요.”

“그럼 어떻게 해?”

“엄마가 깨워줘요.”

평소 과묵하지만, 학업태도가 좋고 어휘력이 좋은 00이의 알람도 궁금했다.

“00이의 알람은 뭐에요?”

“저는 알람 없어요.”

모두 놀라서

“없다고? 그럼 어떻게 일어나?” 한 친구가 물었다.

“날마다 7시 30분에서 40분쯤 눈이 저절로 떠져요.”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야 할 때는 어떻게 해?”

“그때는 엄마가 깨워줘요.”     

알람이 필요 없는 삶이 존재한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된 대화였다. 말을 이어가다 보니 나의 알람도 떠올랐다.




'크 스르륵 퉤. 크르르륵륵'

6시, 어디선가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인지, 윗집인지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방음이 괜찮다고 여긴 집인데, 가래소리는 닭 울음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이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 옆 집 소리에 잠이 깼다고 했다. 가래 소리가 온몸에 휘감겼다. 비위가 약한 나는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상쾌한 아침에 끼얹어진 피하고픈 감각이었다. 11월 채널 예스에서 장미를 코에 대서 그 향기로 잠을 깨운다는 글을 보았다. 그 아이는 훗날 조향사가 되었다고 했다. 기상시간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무의식에서 의식의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다.


 깔끔한 의식의 옷을 입고 싶었지만, 매번 실패했다. 슬프게도 나와 아이의 아침은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요즘은 가래소리가 잠잠하다. 이 평온이 오래가기 바라본다.      



아침은 문이니까.

각자가 아침의 문을 열고 나와 잔잔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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