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름에 피는 꽃. -2

군대생활의 하일라이트 -면회

by 이규만

초조하게 중대 막사를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러다 세척장에 빨랫거리를 잔뜩 들고 있는 문 상병에게 꿈 이야기할까 말까 망설였다. 꿈의 효과는 하루가 고작이라던데. 아무래도 진척이 없고 날아갈 것 같아 이야기라도 하는 것이 나을 거 같았다. 벌써 십오 시가 훨씬 넘어 십육 시가 되어 갈 때였다.

그런데 행정반에서 일직사관을 서고 있던 일소대장이 세척장까지 달려왔다.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박 벽장. 면회야. 어서 준비해.”

“네? 면회 말입니까?”

“그래. 여자 두 명이래. 무척 예쁘다고 위병소부터 난리가 났어.”

“여자 두 명입니까?”

“그렇다니까. 병장이라도 부모님이 어쩌다 가끔 오는 것은 봤는데, 여자들이 찾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야. 휴일에 일직사관을 서도 내가 이렇게 보는 것은 처음이라니까.”

바로 행정반에 소대장을 따라 들어갔다. 이름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대체 누굴까. 혹시 다방 아가씨들 아냐? 전에 외출 외박 통제해서 불만들이 많아 분대 외출시켜 줬을 때 그때 면회하러 오라 말해두었던 아가씨들 아니냐고. 전 그런 적 없습니다. 확인해 보니 미경이었다. 다른 한 명은 누구인지가 쓰여 있지 않았다. 임 미경 외 여 1명.

간밤에 꾼 돼지꿈의 실체가 드러났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돼지 두 마리가 미경과 같이 온 여자라니.

소대에 나에게 여자가 면회해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모두가 난리였다. 모두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동안 편지를 한 두 통 썼어? 정말 정성이 통했나 보네. 여자한테 저렇게 정성을 쏟아부으면 성공한다. 니들도 박 병장처럼 편지를 쓰란 말이야. 일종의 모티브 형식으로까지 부상해 우상으로 떠받들어졌다. 몇몇 동료들은 일개 장복을 다린다, 전투화에 물광을 낸다고 부선을 떨었다. 몇 안 되는 선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성공했어. 그렇지만 부모님이 오시지 않는 면회는 다 말짱 헛일이었다. 특별외박은 고사하고 몇 시간 외출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옆에서 임 병장은 부대장의 통제가 그런 나약한 군대를 만들었을 것이라 비웃었다. 그런 제도와 관행에 적절히 대처하고 따르고 견뎌내는 것 또한 진정한 군 생활의 묘미일진대.

“성남? 내 고향 전남 목포보다는 훨씬 가깝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구만. 얼굴이라도 보는 것이 어디냐?”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공휴일이라고 매점도 문을 닫았다. 철저하네. 철저해. 자기들도 공무원이라고. 참 난감하였다.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온 미경을 맞이하고 대접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마냥 서서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부대에 위병소 면회소가 따로 있기는 했지만, 미경이 내가 나올 동안 한참 대기하던 곳이라 또 데려가서 앉아있기도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내무반에 데려가면 그 남정네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아 한참 부담일 테고. 이리저리 앉을자리를 물색 중이었다. 계속 이곳저곳 부대 안을 쑤시고 돌아다닐 수 없었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별난 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연병장 근처에 나무 의자가 있어 그곳에 앉혔다. 그런데 더 난처했던 것은 미경이가 같이 데리고 와 직장동료라 말한 종임이 걸렸다. 얼떨결에 거수경례했다. 머뭇거리는 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훈련을 나가 구멍가게에서 미경이 회사로 전화 통화할 적 미경을 대변해 주던 여자였다. 미경 씨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목소리가 상당히 밝고 부드러웠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확고부동한 의지를 불러냈다. 얼굴을 꼭 봐야 한다. 어떤 여자인지. 궁금해. 기어이 보게 됐다. 역시 예뻐. 예뻐. 미경이랑 비슷해. 두 여자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 종임의 성숙미가 미경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하도 시선을 종임 쪽으로 두니까 미경이 자신도 있으니 좀 봐 달라는 식으로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남자친구 있는 여자랍니다. 딴생각은 아예 품지도 말라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같이 면회도 왔죠. 미경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언뜻 이해가 안 갔다. 그러면 왜 같이 왔어. 혼자 오지.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미경은 한 치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미경이 그러는 와중에도 좋아라 웃었다. 종임은 잘 웃지도 않았고 심각한 표정이었다. 목석같이 굳은 상태였어도 한순간도 나와는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종임을 힐끗힐끗 미경이 몰래 훔쳐보았다. 식은땀이 자꾸 흘렀다. 행여 땀 냄새가 난다고 할까 봐 불안하였다. 앉아만 있으니까 어색해서 내가 먼저 일어났다. 천천히 연병장을 느릿느릿 거닐며 군부대의 여러 가지 전경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저기는 식당. 저곳은 군 막사. 저기는….”

“그런데 왜 막사라고 하죠?”

말문이 막혔다.

“막은 끝을 말하는 건데. 인생 막장. 끝에 섰을 때를 말하지 않나. 광부들도 석탄을 채굴하는 곳을 막장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막막해져 말을 곧바로 잇지 못했다. 종임과 눈이 마주쳤다. 상황이 흘러갔다. 종임은 이내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도도했다면 내 눈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고 계속 마주친 채 먼저 수그릴 때까지 버텼을 것이다. 가슴에서 쿵 하고 먼가 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게 잠깐이었다. 미경도 잠깐 어색했는지 날 계속 주시 중이었다. 곧바로 말을 얼버무렸다.

“군인들은 전쟁을 대비해야 하거든. 정착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바로 움직여야 하잖아. 그래서 막사라고 하는 거지.”

“유목민처럼.”

“아니 그거 하고 개념이 달라. 그러니까.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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