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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Dec 08. 2024

우리 부부가 사는 법

등에 박힌 선인장 가시를 빼내면서

고흥 팔영산 치유의 숲 트레킹 코스  중  점암면 성주마을에서 시작되는 좀 긴 코스를 걸으려 합니다.  해가 지기에  걸어야 합니다. 요즘 해는 너무 빨리 지거든요.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합니다.

추우니 따뜻한 옷으로 입어라. 빨리 준비해라.

크지도 않은 진짜 잔소리들이 들립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소리지만 말투가 잔소리예요.

내가  퇴직하기 전  학생들에게 잔소리한 것을 되돌려 받나 싶어 피식 웃습니다. 그 정도는 감당합니다. 조기 퇴직하고 살림을 했던 남편이니 대화를 할 사람이 없던 터, 얼마나 잔소리를 하고 싶을까요?  같이 사는 아들에게는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하니  그건 다행입니다.

잔소리 가능한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을 하고도 지나가버리면 곧 잊어버리니  나는  당연히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립니다. 

추워서 완전무장하려고 내의도 꺼내 입고  두꺼운 등산복  티셔츠도 입었습니다. 그런데 입자마자 등이 따갑고 아프고 야단 났습니다. 걸을 때마다 쑥쑥 아립니다.

차를 타러 집에서는 나왔는데 걸을 ㄸㅐ마다 아파서 견딜 수 없어 200m 떨어진 주차장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래도 따끔한 것이 멈춰지지 않습니다.(우리 차는 차박용차고 간단한 옷은 항상 있습니다.)


남편에게 봐 달라고 했으나 슬쩍 훓어보고 없다고 합니다. 이리저리 하다가 벗어 놓은 옷에서 아주 가늘고 뾰쪽한 낚싯줄 잘게 잘라 놓은 듯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손끝에 닿자 바로 찌릅니다.

이렇게 작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보이겠어요.

것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는데  받아 들다가  손끝이 찔렸습니다. '아야'남편은 그제야 아픔을 느낍니다. 나의 등 뒤, 몇몇 곳에서 찔러대는데 자기 손가락만 아프다고 합니다. 손가락에 있는 가시를 뽑아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트레킹코스에 대한 미련이 있는지 화가 난 듯 집으로 가자 말합니다. 아파 죽겠는데 위로는 못해줄망정 화난 목소리를 내다니요. 참 서운합니다.


그것을 뽑아내지 않고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따끔하면 투명하고 가늘고 뾰쪽한 것, 옷에 붙어있던 것이 삽시간에 등에 침투하여 살갗을 뚫고 들어가다니 무섭습니다.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작은 투명한 것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식물일까요? 동물일까요? 그 작은 것이 내 몸속으로 더 뚫고 몸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외계의 생물은 아닐까요?

겉옷에 붙어 있었는데 옷을 입자마자 순식간에 내의를 뚫고 살갗을 파고들다니......


집으로 와서 남편은 너무 가늘어 손으로 뽑을 수 없어 핀셋으로 뽑아줍니다.하나 뽑을 때마다 등이 따끔거립니다. 그렇게 5개 등에서 뽑아내고 팔에서 2개 더 뽑습니다. 연고까지 바르고 마무리합니다. 그래도 뭔가 남아있는 듯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옷에는 몇 개가 더 있는데  가시를 뽑아서 마당으로 추방합니다.

맨살을 뚫고 들어간 것이라 남편이 아니면 누구에게 뽑아달라고 부탁도 할 수 없었는데요. 모두 뽑아 주었어요. 서운함은 잊어버리고 당신이 이 이상한 물건을 다 뽑아주어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잔소리가 많아도 성질을 부려도 옆에 꼭 있어줘야 할 사람입니다. 달콤하고 고운 말보다는 일상에 쓰이는 말이 더 하고 싶다는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라는 시를 떠올립니다.


여보, 사랑해요 하는 그 말보다

'여보, 가시 좀 뽑아줘요.'라 할 수 있는 일상의 그 말이 더 소중함을 느낍니다. 나도 맛있는 차 한잔을 일상의 말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오늘 텃밭에 가서 일을 하다가 보았습니다. 그 뾰족한 것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명하고 뾰쪽하고 찔리면 따가운 것

그것은

바로



백년초 가시


 며칠 전 길게 자랐던 백년초가 쓰러져 두 마디씩 잘라서 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옷에 묻었나 봅니다. 그것의 정체를 알고 나니 안심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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