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효복 Nov 23. 2023

구름 속으로 발을 넣었다

구름 속으로 발을 넣었다   



                

남자는 오랫동안 공중을 읽어왔다  

성공 또한 해지도록 읽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한 곳만 보았다     


베란다 창에 몸을 기댄 채

시선을 멀리 두면 가진 게 많아지는 것 같았는데  

   

먼 산 너머 구름만큼 부푸는 신발을 갖고 싶어

꽉 낀 구두를 벗어난 젖은 발은 

건널 곳이 많은 발은

희고 아름다운 맨발은

     

남자가 뛰어내렸다

앵두의 목이 길어지고

흰 손들이 한꺼번에 펼쳐져 그를 받아안았다 

    

가벼워 얇은 잠처럼 쉬이 찢어지는

닿을 듯 말 듯 허공에 잠긴 저 꽃잎은 

땅에 닿지 못하고     


제 것이 아닌 허물을 나눠 가질 수 없어서

방향 없이 흩날리는데    

 

꽃부리가 놓아버린 맨발 위로 앵두꽃잎 내려앉고   

  

추락인지 비상인지 알 수 없어 비가 내린다 

벌어진 입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어 꽃잎 진다

     

무른 흙 위로 둥근 꽃무덤이 젖는다

저 떨궈진 꽃잎들은 머지않아 붉은 생을 일으키겠지    

 

그는 오늘 한꺼번에 많은 잎을 떨궜다 

팔다리를 잃었으므로 꿈을 셀 수 없다  

   

우는 것들의 한기로 봄이 느리게 지나갔다      




<문장웹진> 2023. 10 발표    

이전 05화 코끼리 씻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