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몰랐던 속초의 용의 전설
먼 옛날 속초의 청초호에는 숫룡인 청룡이, 영랑호에는 암룡인 황룡이 살고 있었다. 두 마리의 용은 승천할 날만을 기다리며 두 호수 밑으로 수로를 만들어 놓고 그믐밤이면 아무도 모르게 서로를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여의주를 탐하던 이무기 한 마리가 황룡의 여의주를 몰래 훔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실을 모르던 청룡은 하늘로 올라가고, 여의주를 잃은 황룡은 승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두 마리의 용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은 각각 청초호와 영랑호의 물을 맑게 만들었다고 한다.
고즈넉함을 품은 단아한 황룡, 영랑호
영랑호의 시작점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따로 입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다른 곳으로 연결된 길 또한 많기 때문이다. 굳이 입구를 정해보자면 영랑호 기수지역에서 시작되는 영랑호 수변데크 산책로쯤 일것이다. 오늘은 그 수변데크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보광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보광사의 연원은 400년 전 1623년 인조 원년에 창건되었다. 도천면이 속초면으로 변경된 1937년 현재 위치로 이건되어 보광사로 개칭 되었다. 보광사는 지장보살좌상, 현황도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는 속초의 대표 사찰이다. 대체로 사찰이라 하면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보광사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7번 국도와 근접한 곳에 위치해서 접근성 또한 매우 좋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잎으로 가득한 자그마한 연못이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밝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정자, 용연정이 있다. 용연정의 기둥은 모두 용이 감싸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용연정의 가운데에는 나 홀로 명상의자 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에 앉아 연꽃의 향기를 맡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연못의 맞은편에는 사찰의 꽃인 대웅전이 있다. 보광사의 대웅전은 다른 절들과 달리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대웅전 현판 양옆에 위치한 용 두 마리이다. 현판의 옆에 보이는 머리는 벽을 통과하여 대웅전 안쪽으로 몸통과 꼬리가 있다. 불교에서의 용은 천룡팔부의 하나로 불법에 귀의하여 정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기에 많은 사찰에서도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용마루의 끝이나 추녀마루에 있다. 하지만 보광사는 대웅전 현판의 양옆에 위치하여 방문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마주한다. 두 마리의 용 사이로 대불상이 보이는 것이 마치 부처님을 수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에는 목어가 놓여있는데, 대체로 목어는 물고기의 형태로 되어있지만 보광사의 목어는 커다란 두 개의 뿔을 가진 용의 머리를 하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 위치한 석등 또한 연꽃 모양의 기둥이 아닌 네 마리의 용이 감싸고 있다. 이렇듯 보광사에서 용의 형태가 눈에 띄게 많은 것은 영랑호가 품고 있는 황룡의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두운 밤이 되면 진가를 발휘하는 화려한 청룡, 청초호
청초호는 속초에서 가장 큰 공원인 청초호 호수 공원과 맞닿아있다. 접근성도 좋고 규모도 큰 만큼 속초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원이다. 청초호 호수 공원은 1999년 국제 관광엑스포가 개최된 곳으로 넓은 만큼 테마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넓은 운동장과 놀이터,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 호숫가를 따라 긴 데크길과 쉬어가기 좋은 다양한 벤치들이 놓여있다.
청초호 호수 공원의 분수대 앞에는 청룡과 황룡, 두 마리의 용이 시계의 양옆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포즈의 용 두 마리가 청초호를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철새 도래지가 있다. 청초호의 생태계를 몰래 훔쳐볼 수 있는 망원경도 있어 철새들이 물고기를 낚는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다. 간혹 운이 좋다면 호숫가 주변에 자라난 커다란 나무 위에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듯 철새들이 주렁주렁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청초호는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설악산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 바다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몰려들고, 반대편 산 쪽으로는 마치 오늘 다 비추지 못한 마지막 햇빛을 발산하기라도 하듯 설악의 형태만을 보이며 붉디붉은 노을을 흩뿌린다. 그 뜨거움과 찬란함이란 감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붉은 노을빛마저 사라진 청초호에는 마치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오색찬란한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오색빛깔의 불빛들이 청초호 물결 위로 번지며 산책로를 밝힌다.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보이는 것은 청초호 위에 떠있는 청초정이 우리를 맞이한다.
청초정에 올라 청초호를 바라보면 좌로는 속초 시내의 여러 불빛이 보이고 우로는 걸어왔던 청초 호수공원의 산책로 불빛이, 정면에는 붉은 설악대교가 좌우를 연결하고 있다. 어두운 밤 호수를 수놓은 화려한 불빛들. 그곳에 있으면 마치 이곳 청초호의 주인이라도 된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헤어진 두 마리 용의 결말
청초정의 입구에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청룡과 위를 올려다보는 황룡 한 쌍이 있다. 하늘로 올라가 지상의 황룡을 그리워하는 청룡과 지상에 남아 하늘의 청룡을 그리워하는 황룡.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청초정 입구의 두 마리 용 밑에는 그 결말이 적혀있으니 방문해서 그들의 결말이 과연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