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죽는가, 다시 태어나는가? 우주의 미래.

우주 차원의 밀당에 대하여.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매거진에서는 상식 밖 과학 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과학적 상식들, 여전히 유효할까요?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 예쁘다고 손을 내밀며 성급히 다가가는 순간, 녀석들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달아나 버리고 만다. 반대로 '관심이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무심하게 행동하면, 고양이는 그제야 안전한 인간인지를 탐색하며 다가올지 말지 머뭇거린다.


밀고 당기기, 이른바 '밀당'을 잘해야 하는 건 비단 고양이를 대할 때뿐만이 아니다. 남녀 사이, 부모와 자식, 그리고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서도 이 보이지 않는 거리 조절은 관계의 성패를 가른다. 별 볼 일 없는 상품을 홍보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가는, 고객의 마음을 얻기는커녕 차단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 십상이다.


이제 우리가 발 딛고 선 평범한 세계를 넘어, 원자 단위의 아주 작은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자.



1. 미시 세계의 밀당


이 작은 세계에서는 '강한 핵력'이라는 힘이 존재한다. 원자핵 속의 중성자가 양성자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인데, 이 끈끈한 핵력 덕분에 우주에는 양성자가 여러 개 모여 만들어진 다양한 원소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양성자 두 개가 모이면 헬륨, 세 개면 리튬, 여섯 개면 탄소가 되는 식이다. 만약 핵력이 없었다면 우주는 양성자 하나뿐인 수소로만 가득한 지독히 단조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시 세계에 당기는 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전자기력 같은 힘들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주 작은 세계 안에서도 정교한 밀당의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세계는 어떨까? 생업에 지쳐 차마 눈 들어 올려다보지 못하는 곳, 일상의 번잡함에 밀려 생각이 자주 닿지 못하는 그곳.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몸담고 있는 거대한 우주 말이다.



2. 우주의 밀당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우리는 대략 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이 사실 하나만은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달까지의 거리 38만 km는 아득히 먼 거리지만, 빛은 그 거리를 단 1.3초 만에 주파한다. 그런데 그 눈부시게 빠른 빛조차 무려 465억 년을 달려가야 하는 지점에서도 여전히 우주의 존재가 관측된다.


이토록 아득한 시공간을 가늠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우주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외계인과 성간 여행, 다중 우주와 시간 여행은 늘 영화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고, 사람들은 마침내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한다.


"먼 미래, 이 거대한 우주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우주가 벌이는 거대한 '밀당'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당기는 힘, 바로 중력이다.

뉴턴의 사과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지구도 100만 배 이상 무거운 태양의 중력에 이끌린다. 태양 역시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에 이끌려 은하계를 공전한다. 블랙홀에서 태양까지 3만 5천 광년이라는 아득한 거리조차 중력의 손길은 미친다. 중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지만, 결코 0이 되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주 전체를 하나의 운명으로 묶어 세우는 집요한 '당김'이다.


그런데 약 100년 전, 천문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우리은하 바깥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다른 은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현재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은하의 개수는 2조 개 이상으로 추산). 당시로서는 인류의 세계관이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발견은 더욱 기묘했다. 은하들이 서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거리가 멀수록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이다. 중력이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은하들은 서로 잡아당겨 가까워져야 마땅한데, 우주는 오히려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조차 처음에는 이 사실을 부정하며 우주는 평형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우주의 밀당



3. 우주에는 미는 힘이 더 강하다?


측정이 거듭될수록 은하들이 멀어지는 '적색 편이' 현상은 명확해졌다. 인류는 깨달았다. 우주에는 당기는 중력뿐 아니라, 공간을 밀어내는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로써 '빅뱅 가설'이 세워졌고, 수많은 관측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하며 거부할 수 없는 정설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우주의 팽창 속도는 일정할까? 아니면 잡아당기는 중력 때문에 결국 점점 느려지게 될까? 과학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세 가지 길을 찾았다.


(1) 우주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 측정: 빅뱅 38만 년 후, 원자들이 안정되며 우주로 퍼져나간 '태초의 빛'을 추적하는 방법이다. 빛이 멀리까지 뻗어나갔다면 먼 곳의 빛은 아주 희미할 것이다. 이를 통해 326만 광년 거리당 초당 67km의 속도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값을 얻었다.


(2) 바리온 음향 진동(BAO, baryon acoustic oscillations) 측정: 초기 우주의 물질들이 남긴 파동의 흔적을 분석하는 이 정밀한 방법에서도 약 67km/s/Mpc라는 비슷한 수치가 산출되었다.


(3) 1a형 초신성 측정: 백색왜성은 특정 질량(태양의 약 1.4배)에서 폭발하기 때문에 실제 밝기가 일정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거리에 따라 겉보기 밝기는 다른데, 이를 관측해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진이 측정한 결과, (1), (2)의 측정 방식보다 훨씬 빠른 약 73km/s/Mpc의 속도가 나왔다. (1), (2)의 계산보다 별들이 훨씬 더 멀리 있었다.


우주는 중력에 의해 속도가 줄어들기는커녕, 달리는 자동차가 가속 페달을 깊게 밟듯 더 빨리 멀어지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4. 슬픈 우주의 미래?


이 발견은 다소 서글픈 우주의 미래를 예견한다. 우주가 중력이라는 '당김'을 이겨내고 무한히 멀어지는 '밀어냄'을 택했다면, 그 끝은 두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열적 사멸(Big Freeze)이다. 모든 물질이 무한히 멀어져 결국 절대 영도(약 영하 273도)에 도달하고, 원자마저 서서히 붕괴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차가운 죽음이다.


두 번째는 빅 립(Big Rip)이다. 가속되는 팽창의 힘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원자들이 붕괴하기도 전에 우주의 모든 시공간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파멸이다.


과학자들은 열적 사멸은 10^100년이 걸리고, 빅립은 200억 년이 걸린다는 엄청난 시간 차를 예견하지만, 결국 두 시나리오의 결론은 같다. 우주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차갑게 식어 사라진다는 것. 중력이라는 애틋한 당김이 공간을 밀어내는 비정한 힘에 패배했을 때, 우주는 그렇게 고독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것이 바로 2025년 10월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우주의 풍경이었다.



5. 우주 죽음의 가설에 도전하다.


약 반년 전 2025년 11월, 동양의 과학자들 몇 명이 영국 왕립 천문학회에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Strong progenitor age bias in supernova cosmology - Alignment with DESI BAO and signs of a non-accelerating universe (번역: 초신성 우주론에서, 나이의 편향성이 강하게 나타남 - 바리온 음향 진동 측정과의 일치 및 우주가 가속팽창하지 않는다는 징후)


논문의 결론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2011년 노벨상 받은 너희들이 초신성 측정값으로 계산한 우주 팽창 속도 73km/s/Mpc는 틀렸어. 우주는 가속 팽창하지 않아. 우주는 17억 년 전부터 감속 팽창에 접어들었어. 바리온 음향진동 측정과도 일치해."


이 동양인들은 바로 연세대 이영욱 교수, 정철 연구교수, 손준혁 연구원, 박승현 연구원이었다.


이들이 내세운 논거는 명확하고도 날카롭다.

모든 1a형 초신성의 실제 밝기가 같을 것이라는 전제는 오판이다.

우주 초기에 터진 초신성에 비해, 나중에 터진 '늙은' 초신성은 중금속(니켈, 코발트 등) 함량이 높아 훨씬 더 밝다.

이 '나이에 따른 밝기 차이'를 보정하면, 초신성 측정값은 우주배경복사(CMB)나 바리온 음향 진동(BAO) 측정값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즉, 가속 팽창의 증거로 쓰였던 데이터 오류가 사라지는 것이다.


※ 자세한 설명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논문의 원문 파일을 첨부한다 ↓


이 논문은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CNN, AP통신, 영국 BBC가 앞다퉈 다루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비교적 조용했다. 메이저 언론에서는 단신으로 처리되었고, 과학 유튜브에서나 간간히 언급될 뿐이었다.

그나마 이를 자세하게 다룬 언론은 프레시안이 유일했다.


"우주는 약 17억 년 전부터 감속 팽창…2011년 노벨상 수상자들 연구는 틀렸다"[최준석의 과학자 열전]


혹자는 물을지 모른다. 우주가 좀 천천히 커진다는 게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여기에는 인류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철학적 반전이 숨어 있다.



6. 빅뱅이 또 일어난다고?


우주가 가속 팽창을 멈추고 감속하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그 팽창 자체가 멈출 것임을 시사한다. 팽창이 멈춘 순간, 우리는 잊고 있었던 우주의 오랜 '밀당' 파트너를 떠올려야 한다. 바로 모든 것을 다시 끌어당기는 힘, '중력'이다.

팽창의 힘이 힘을 잃으면 중력이 주도권을 잡는다. 우주는 다시 쪼그라들기 시작할 것이고,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귀결되는 '빅 크런치(Big Crunch)' 모델이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초고압·초고온의 끝에서 우주는 또 다시 폭발한다. 이른바 '빅 바운스(Big Bounce)'다.


이 발견이 소름 돋는 이유는, 인류가 믿어온 '시작과 끝이 있는 선형적 세계관'이 '영원히 반복되는 순환적 세계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더 검증을 거쳐야 하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우리 우주는 단순한 138억 년의 역사가 아니라, 수조, 수경 번을 반복해 온 'x번째 우주'의 138억 년일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정보는 보존된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울고 웃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모든 것들은 예전 우주의 정보들이 반복되었던 결과일까?

지금 우리 삶의 정보도 다음의 우주에 남겨지는 것일까?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집념이 일궈낸 이 발견이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길...

그리고 우리의 짧은 노래가 다음 우주에서도 정보의 조각으로 남겨지길...


자랑스러운 연세대 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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