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ed by 위대한 레보스키 (The B eig Lebowski
일반적으로 극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것을 난 개연성이라고 생각한다. 각 씬 (Scene)과 씬, 시퀀스 (Sequence)와 시퀀스, 더 깊게 들어가면 숏 (Short)과 숏 단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유기성을 띄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건과 사건은 촘촘하게 맞물려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 약간의 느슨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둘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관객은 개연성을 효과적으로 체감할 수 있고 극은 하나의 결과물로서 자연스러움을 띌 수 있다. (이는 영화가 끝끝내는 감독의 예술인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라는 세계는 오롯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끝나기에.)
하지만 서두에 말한 것처럼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극이 반영하고자 하는 실제 현실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 개개인이 느끼듯 어제와 오늘 사이의 개연성 따윈 보이지 않는 순간들도 천지 빼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언제나 이런 현실의 아이러니를 매우 날카롭게 짚어내고, 혼란스럽지만 매우 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내가 가장 빈번하게 떠올리는 그들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 또한 그렇다.
일명 '듀드 (the dude)'라 불리는 주인공 '제프리 레보스키'는 백수다. 그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일은 어딘가 나사 빠져 보이는 친구인 '월터', 역시 약간 모자라 보이는 '도니'와 볼링을 치고 '화이트 러시안'을 마시는 일이다. 이렇다 할 삶의 목표는 없어 보이지만 딱히 결핍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에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겠지만, 그는 나름의 만족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상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어떤 사람과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영문모를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연발된 다른 사건들에 개입하게 되고, 십만 달러를 얻기 위해 상황을 컨트롤해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친구인 '도니'를 잃는다.
요약한 시놉시스의 모호함처럼 영화를 감상한 뒤에도 이 영화는 도통 개연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조금 느린 템포로 이어지는 사건 전체를 조망해보면, 웃기게도 이 영화는 현실과 꽤 가까운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넓게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세계 금융 위기, 좁게는 매일같이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까지. 어떤 사건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일상에 폭탄처럼 투하된다. 시작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법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지만, 대게 이런 성격의 사건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서의 모습보단 여파의 일부분으로 전달된다. 억울하게, 그리고 뜬금없게.
이 영화는 이런 지독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엔 형제, 그들이 다른 작품에서도 줄곧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리고 영화 막판, 이런 메시지는 관객에게 서글픈 웃음을 선사하며 극대화된다.
세 친구는 불량배 세명과 육탄전을 벌이게 되고, 총을 맞거나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님에도, '도니'는 그런 상황에 놀랐는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유골함은 180달러, 돈이 없는 '레보스키'와 '월터'는 '도니'의 유골을 빈 깡통에 담아 바다가 보이는 절벽으로 향한다. 조의를 표하며 유골을 허공에 뿌리지만 바람은 역풍, 뼈가루는 그대로 '레보스키'의 얼굴을 뒤덮는다.
죽은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 조차 뜻대로 못하는 아이러니함, 관객은 맘 놓고 웃기도 슬퍼하기도 애매한, 이런 삶의 단면을 보며 도무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이후엔, 영화 속에서도 영화 밖에서도 그저 또 다른 일상이 다시 이어질 뿐이다. 코엔 형제도, 우리도 죽기 전까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가 엉망진창인 이 삶이 무엇인지.
이따금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 듯 같다. 불로소득을 따라가지 못하는 근로소득, 전 세계 대도시의 미친 부동산 가격, 교육받은 가치가 분리된 현실. 태극기 부대, 트럼프와 바이든의 토론.
경쟁, 경쟁, 경쟁. 한탕주의, 로또, 인생은 도박. 내 일상과 머리도 이런 것들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우린 너무 많은 지식을 욱여넣었느라 되려 멍청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동생에게 우스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요절하면, 내 유골은 최고급 호텔 변기에 뿌려 일분 간의 묵념 후 물을 내려달라고. 기왕이면 황금 변기로.
그러자 동생은 말했다.
"그럼 오줌 쌀 때마다 난 형을 생각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