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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것이 꼬인 것이 아니다.

그게 운명일지도 모른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 일찍 차가 막히기 전에 목동을 다녀오려 마음 먹었다.

아픈 동생도 보고

(서울을 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닐지 모르지만 목동에 머무를 시간도 있으므로 굳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눈을 모두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계약건 처리를 위해 가지고 있던 동생의 도장과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는 일이 하나의 미션이었고

다른 하나는 막내동생집에 비상시에 사용할 자잘한 것들을 미리 가져다 놓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맞으면 백화점에 주문해둔 마일리지 상품을 받고

아이보리색 무릎 길이의 부담스럽지 않은 경량 패딩이 있음 사고

푸드 코트에 맛난게 있음 사려했다.

계획은 그랬는데 첫 걸음부터 꼬였다.

이상하게도 나의 운전 실력은 비슷할테지만

어느 날은 스무스하게 잘되고 어느 날은 영 그렇지 않다.

오늘은 영 첫 번째 차선 변경부터 잘 되지 않았다.

이런 날은 조심해야 한다.


목동에서의 미션을 다 처리했는데

백화점 오픈 시간까지는 멀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계획을 급수정하여

주말 교통 체증이 오기전에 귀갓길에 올랐다.

그런데 여전히 차선 변경이 애매모호하게 잘 안된다.

그것에 신경쓰다가 나가야할 통로를 놓쳐서

생각지도 못한 이촌동을 한바퀴 돌고

그러다가 문득 나의 3년 반 주 산책 경로였던

대형 마트와 한강공원에 들러서 작별하기로 급 계획을 변경한다.

너무 즉흥적이기는 하다만

그 대형 마트 뒤편의 한강공원까지 산책을

언제 다시할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차를 가지고 이동할거라 생각해서 두툼한 겉옷을 입지 않은 거다.

그리고 매번 걸어다녔던 길을 처음으로 차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니 그것부터 낯설기 짝이 없다.

간신히 조심조심 주차를 하고 주차 위치를 사진 찍어두고

(아니면 못찾는다. 본태성 길치이자 지하세계에서는 좌우 구분도 쉽지 않다.)

패딩 구경은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것은 150만원이라 하고(헐.)

고양이 설이의 장난감과 간식을 사고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남편이 먹을 야채만 사서 돌아왔다.


오늘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꼬였지만

꼬여서 폭망한 것은 아니다.

한강공원은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다녀오면 병이 날 확률이 꽤 높다.

일단 옷이 얇고 티눈 발가락이 쑤셔오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잘했다. 오늘이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은 버린다.

언젠가는 또 갈 일이 있을 것이다.

인생. 너그럽고 여유있게 생각해야 한다.

다행히 차선 변경에 끝까지 조심하면서 귀가에 성공했고(징크스에서 벗어났다.)

상추 씻어서 마늘 얹어서 고기 구워 폭풍 흡입했다.

디저트는 10시 대에 방문하면 1+1을 주는 도넛을 그것도 마지막일텐데 받아두었었다.

오늘 오전으로 그쪽 공간과는 작별을 고한다.

대문사진이 그쪽 공간의 시그니처 전시물이다.

배가 부르니 잠이 몰려온다.

주말 오후는 낮잠이 국룰이다.

푹 잘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 주는 쉼이다.

꼬인듯 꼬이지 않은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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