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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

소소하지만 커다란 차이

by 태생적 오지라퍼

베란다가 없는 집에 살았었다. 10여년 정도.

발코니와 베란다가 다른 의미라 했는데 사실 잘 구별이 되지는 않는다.

발코니는 거실의 연장 선상에 돌출되어 설치된 공간으로 건축면적 불포함,

베란다는 2층 건물의 1층 지붕위에 만들어진 공간으로 건축면적 포함이란다.

여하튼 주상복합에서 7년 정도를 살아서

발코니도 베란다도 모두 없었고

이사오기전 아파트도 아들 녀석이 사용하던 방에 작은 베란다가 있었을 뿐이었고

그곳은 아들 녀석 친구가 맡아달라고 했다는 자전거만 둥그러니 자리를 차지했던 죽은 공간이었다.

세탁실 뒤편의 베란다는 난방기구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 베란다로서의 구실을 감당하지는 못했다.

두 곳 모두 건조기까지 있는 세탁기를 사용해서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되니 그 역할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10여년만에 큼지막한 뒷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이다.


그 공간에 세탁기 2대가 들어가고(동생것과 내것)

작은 냉장고 1대(동생 것) 이 들어가고

빨래바구니와 각종 분리수거 물품과 세탁용품들이 들어가고도 공간이 많이 남는다.

난방이 되지는 않아 시원하니 그곳에 먹다남은 국냄비를 올려놓기도 하고 과일이나 야채를 두기에도 딱이다.

따라서 냉장고 칸이 넓어진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난다.

시어머님의 베란다 가득했던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치웠던 기억이며

우리집 베란다에 그득 그득 놓여있던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미역귀와 짭조롬한 굴비 그리고 마늘과 양파망이 생각난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무엇인가를 그곳에 늘어놓을 생각은 1도 없다만

그 뒷베란다를 보니 옛날이 생각나는 묘한 향수가 솟구친다.

지금은 학기말로 바쁘니 놓아두었다가

차근차근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신을 시켜볼 생각이다.


이사를 왔고 이곳은 서울이 아니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또 한가지는 분리수거를 할때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카드로 버리거나

집에서 슝하고 내려가게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여기는 그냥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리면 된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도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내 지하주차장도 널널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까다로운 차량과 출입통제 시스템도 없다.

이 두 가지는 어쩌면 신박하지는 않지만

더 편리한 점일지도 모른다.

커뮤니티 센터에 사우나만 없을 뿐 나머지는 비슷하고

집 근처에 병원과 약국이 없다는 점이 가장 걱정되는 점이기는 하다.

아프면 안된다고 강하게 세뇌를 한다.

남편은 오늘 오전 산책에서 공기가 상쾌하고 호숫가까지 거닐면서 오리도 보았다고 하고

오후 세시반까지 집안에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고

그리고 아산 공장까지 주 2회 정도 운동삼아 출근을 하겠노라고

다행히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오늘도 상쾌한 새소리를 들었고

(조치원의 조가 새조자라고 한다.)

장거리 출퇴근에 성공하였다.

뒷 베란다와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시스템과

단지내 차량 및 출입통제 시스템만 아니면

그리고 내 방에서 보이는 일출과

남편방에서 보이는 일몰만 아니면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는 것을 집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릴만 하다.

내일 서울로 회의하러 기차타러 가면 확연히

여기가 서울이 아님을 느끼게 될터이지만.

그것은 내일의 내가 치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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