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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마지막 퇴직기념 모임

멋진 피날레였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첫 번째 학교와 두 번째 학교는 내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교직생활의 두 페이지이다.

교사에게 첫 학교란 첫사랑 못지않게 강렬하다.

좋은 의미에서이건 그 반대의 경우이건간에.

나는 물론 엄청 좋은 의미로 강렬했고(물론 멋진 학생들 덕분이다.)

그 때처럼 지금도 순수하게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좋아할 수 있는건지는 사실 확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지금 무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초임교사 선생님들에게 많은 격려와 사랑을 보내드리는게 맞다.

그 첫사랑과의 5년을 보내고(1년 유임을 했었다.)

두 번째 학교로 갔을때는 너무도 다른 환경이라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었으나(자칭 타칭 명문 학군이었다.) 그곳에서의 4년도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근 10년의 행복을 가져다 준 한창 바쁜 제자들이

오랜만에 모여 나의 정년퇴직을 축하해준다고 하니 고마울뿐이다.

물론 해외에 거주하는 녀석들도 있고

먼 지방에 거주하는 녀석들도 있고

요즈음 유행하는 감기에 걸려서 고생중이나

정작 아픈 본인이 쉴 수는 없는 의사도 있었지만

모임에 못나왔다고 내가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격려와 지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단언코.


옛날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신나고 재미있다.

내가 알았던 것도 있고 오늘 처음 알게 된 몰랐던 일이 더 많다.

첫 학교와 둘째 학교 제자들은 이미 오래전 내가 네트워킹 그룹을 만들어놔서

나보다 이제 저희들끼리 더 친하다.

여름방학에는 바닷가를 가고

겨울방학에는 스키를 타러가고

누군가가 장학금을 받으면 축하해주고

누군가가 군대에 가면 위문편지도 써주고 면회도 가고

누군가가 취직을 하면 축하해주면서 그렇게 지낸지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이제 그들도 나와 함께 늙어가니

제자인지 후배교사인지

나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들인지

이제 그 정체성은 모호해졌지만 누가 뭐래도

나의 정년퇴직까지의 출발점을 이끌어준 공로자들이기도 한다.

바쁜 일상에 시간을 내서 나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혼밥하지 않게 해주고)

들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꽃바구니도 주고(당신의 내일을 응원한다고 한다. 고맙다.)

백화점 상품권도 주고 향초도 주고

이제는 받는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 마음에 몹시 걸린다.

식사 후 너무 약소한 차는 샀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맛난 짜장면을 사주던 그 상황이 훨씬 더 마음편한데 말이다.

다음에는 꼭 좋은 일로 내가 맛난 밥을 사는 날이 머지않아 오게 되기 바란다.

그것이 나의 재취업이 되든 아들녀석의 결혼식이 되든 생각하지 못한 일이 되든간에 말이다.


약속 장소가 모두 모이기 쉬운 광화문이이서

좋아하는 미술관의 전시도 감상하게 되었고

(내용 파악이 직관적으로 되는 전시물은 아니었다만)

의도치는 않았지만 현재의 어지러운 시국도

창문 하나 너머로 보게 되었고(창문 하나 사이로 다른 세상이다.)

봄이 오려하는 청계천도 살살 걸어보았고

맛집을 가득한 D 타워 주말의 생동감도 느껴보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커다란 꽃바구니 덕택에

광화문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오는 호사를 누렸다.

매번 지하철 5호선으로 지나던 그 길목들의 지상을 지나보니 그 느낌 또한 신기했다.

혼자 집을 지킨 고양이 설이는 꽃바구니를 보자마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고마운 밤이었다.

그들의 인생도 저 조형물의 중간 중간에 있는 빛처럼 반짝거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물론 굴곡은 있을테지만 빛나는 순간의 추억으로 굴곡을 넘어서는 것이 인생살이이다.

잔잔한 인생이란 없다.

그것을 기대하지는 마라.

이제 그것쯤은 다 알 나이이다만.

어젯밤은 정년퇴직 모임의 마지막

피날레다운 모임이었다.

원래 마지막에는 우주 대스타가 등장하는 법이다.

콘서트의 마무리는 당대 최고의 스타가 하는 법이다.

어제가 그런 밤이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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