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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불안정 애착

2024년 4월 29일

 


 공포 회피형에 대한 글을 찾아보다가 일기를 쓰는 것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고 블로그에 가끔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폰에 있는 앱으로도 일기를 쓸 수 있지만 시간을 내어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짧게라도 쓰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20대는 정신없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던 시절이었고, 서른넷에 들어선 지금은 30대가 온전한 나를 알아가는 기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군가는 20대에 이미 그런 시기를 거쳤을 텐데,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모든 것을 거친 후에 거꾸로 돌아가 이제서야 스스로를 깨달아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나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생긴 상처들은 곪고 깊어지고 만성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늘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축축한 우울은 그 존재감이 많이 옅어졌다. 또 인생이란 게 나쁘지만은 않고 살만하다는 생각도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예전과 달리 그 생각을 잡고 울고불고 늘어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투명한 유령이 되어 생각이라는 것이 나를 스쳐 지나가도록 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배경엔 30대가 되어 진심으로 마음을 쏟았던 연애들이 있다. 직전의 연애는 나라는 사람의 결핍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계기였고, 지금의 연애는 그런 나의 결점을 보완하고 동시에 나의 장점과 강점을 알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 신기하지. 20대의 수많은 연애들이 내게 털끝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걸 생각했을 때 단 두 번의 깊고 진정한 사랑이 짧은 기간 내에 나를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생각해 보자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오늘 검사를 한 성인 애착 유형 테스트를 보니 회피는 많이 줄었고 불안은 조금 더 올라가 두 가지가 비슷하게 상위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불안이 높아진 게 좋은 신호는 아니겠으나 회피 성향 때문에 평생을 괴로웠던 나는 회피가 덜해졌다는 것이 참 감격스럽다.


공포 회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분명히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지는 지점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강렬한 감정은 아니다. 아빠도 엄마도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애정 다운 애정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따뜻하게 마음을 들여다봐주기는커녕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다재다능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더라면 분명 큰 성공을 이루셨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가부장제 속 차남으로 태어나 장남의 그늘에 가려져 꿈을 펼쳐보지도 못했다. 젊은 날 노력하여 스스로 일궈낸 것들은 IMF에 직격탄을 맞아 모래성처럼 스러졌고 그 속에서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 그 치열했던 시절이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입에 겨우 풀칠할 수 있을만한 재정과 병든 몸, 데면데면한 자식들뿐이다. 엄마는 정도 많고 흥도 많아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넘치는 활발한 사람이었다. 책임감도 강하고 실행력이 좋아 집이 어려워졌을 때 물불 안 가리고 온갖 거친 일들에 뛰어들어 가정의 위기를 버텨냈다. 평생을 소처럼 일하면서도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튼튼한 사람이었는데, 큰 딸인 내가 직장을 얻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악성 파킨슨이라는 불치병을 얻어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에 대한 부분은 아직도 내 안에 미결로 남아있는지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고 눈물이 나서 고통스럽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마음을 잡고 일기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빠도 엄마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그들도 인생의 매 순간순간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것에 비해 돌아온 것은 너무나도 미미했다. 누가 감히 그들을 비난하고 원망할 수 있을까. 그게 자식인 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되 부모의 결핍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나이 차가 나는 장녀로서 항상 의젓하기를 요구받았다. 나는 온전히 나이기보다는 동생들에게는 모범, 부모님에게는 자랑이 되어야만 했다. 생각이 많고 예민한 기질을 가진 나는 나의 이런 면들을 이해하고 깊은 소통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사는 게 바빠서, 그런 게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몰라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적절히 해주지 못했다. 기민한 생각들과 부정적 감정들은 해소되지 못하고 안으로 침잠했고 그로 인한 불행감과 우울감은 나를 평생 따라다녔다. 나의 진정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거나 끄집어 낼 기회가 없었기에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솔직히 표현하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어렵다. 또 나 자체로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치열하게 어떤 것이든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여기서 내가 똑바로 인지하고 노력해야 할 점은 내가 정말로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다. 부모님도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도 해줄 수 없었다. 그냥 그뿐이다.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 날 것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도 괜찮다.


괜찮다는 주문을 외우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공포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나여서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면 어떡하지. 내가 나일 때 사랑스럽지 못해서 사람들이 나를 떠나가면 어떡하지. 뿌리 깊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관계에 대한 의심이 해결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지. 쉽지 않겠지만 계속 노력하고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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