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뇌과학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에요?' 라는 질문은 조회 수가 보장된 컨텐츠 제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는 주제다. 아니, 많은 여성들이.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질문일 수 있지만, 뒤틀어서 생각해보면 세상은 깊이가 보인다.
왜 남성들은 이런 질문을 잘 안할까?
"어떤 여자가 좋은 여자에요?"
이런 제목은 유튜브 조회수가 안 나온다. 남자들은 관심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기인하지만, 결국 성별의 차이는 문화적으로 굳어진다.
선사시대 때부터, 호모사피엔스 암컷들은 능력있고, 사회성있는 수컷을 선호했다. 아이를 키워내는 데에, 다른 동물에 비해 너무 많은 자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암컷들은 수컷을 고르는데 신중하고 까다롭게 진화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따지는게 많다. 그에 비해, 수컷들은 암컷이 여성적으로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자녀를 낳기에 충분한 여성호르몬과 안정적인 정서만 보장되면 상관 없다. 그래서 남자는, 성격 밝고 예쁜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
이런 차이는 현대사회에서 심리적인 포지션으로 굳어진다. 여자는 남자를 따지는 기준이 복잡 미묘해지다보니, 다른 언니들이나 엄마들이 남자를 볼 때, 뭘 보는지 따라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들은 아빠랑 형이 여자볼 때 뭘 보는지 관심없다. 내가 좋은 여자랑 만나면 된다. 여기서 큰 차이가 갈라진다. 여성들은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도, 사회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여성이라는 집단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남자들은, 남자 집단 전체의 눈을 의식하는게 훨씬 덜하다. 이것은, 본인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이젠 여성들도 이런 것에서 많이 주체적인 시대가 되었다. 언니나 엄마가 좋아할 법한 남자 말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 만나야 해.'라는 말에 빠져 공주처럼 굴던 시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조금 더 사랑과 관계에서 주체성이 높을까? 당연히 본인의 가치관과 감정에 귀를 기울인 시간이 긴 쪽이다. 이 쪽이 좀 더 주체적이다. 내가 선택한 쪽과 사회가 좋다고 한 쪽 중에 어느 쪽에 더 헌신하게 될까? 당연히 내가 선택한 쪽이다. 사회가 좋다는 쪽으로 갔던 사람들은관계에 헌신하기 힘들다. 좋다고 해서 따라다녔는데 왜 내가 헌신해야한단 말인가? 주체적인 사람은 능동적으로 흔쾌히 그리고 멋있게 헌신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멋있게 깊어진다.
세상에 좋은 남자, 좋은 여자는 없다. 내 눈에 안경만 있을 뿐이다. 그 안경의 장단점은 반드시 존재하고 나만의 칼라에 맞는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커버하고 살면 된다. 식상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진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