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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Sep 04. 2024

세상을 다시 보기 (6)

신념을 전파한 자본주의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는 분명 기존 체제를 변혁하여 현대문명이란 새로운 체제가 자라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이 체제가 유럽을 넘어 지구를 뒤덮진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무기를 만들 지식이나, 군대를 지휘할 권력을 제공해주진 않지만,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돈을 축적할 환경을 조성했다. 말하자면 과학혁명과 계몽주의에서 싹 틔운 신념이 자랄 수 있도록 물과 양분을 공급했다. 자본주의는 신념을 ‘경제적 자유’란 구호로 재해석하여 사람들에게 전파시켰다.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 내 삶은 풍요로워진다고 말이다. 이로써 자본주의는 효과적으로 체제의 효능을 증명하였고, 사람들은 내 삶에 신념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체감했다. 


이를테면 경제적 자유는 신념의 자본주의 버전에 해당한다. 밀턴과 로즈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선택할 자유》에서 경제적 자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제적 자유의 또 하나의 본질은 자기 소유의 자원을 자기 가치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이며 즉, 이러한 자유는 엄격한 자발적인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을 강압하기 위하여 힘에 의존하지 않는 한, 자유스럽게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사업활동에도 참여하고, 어떤 사람들과도 사고팔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16) 그(녀)는 분명 자본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드러냈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효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이런 태도는 어쩔 수 없이 핵심적인 문제를 비껴간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현대문명에서 생겨난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할 것인가? 또는 누가 얼마나 경제적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를 향한 독특한 삶의 풍경을 자아냈다. 예전엔 이상으로만 여겨졌던 물질적 풍요로움을 모두가 꿈꾸며 실현하기 위해 매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넘쳐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자본주의에 근거한 자유시장은 언제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동안 이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건, 산업혁명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생산과 소비가 마치 모두에게 재화와 서비스가 분배될 것처럼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관한 진실이 폭로되자 특권층과 나머지 사이에 격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옥스팜 보고서 〈불평등 주식회사〉에 따르면, 2020년 이래 빈부격차는 극에 달했다. 세계 최상위 부유층 5명의 자산은 2배가 되었고, 세계 10대 기업 중 7개 기업에 억만장자가 최고경영자 또는 주요 주주로 있으며, 세계 최상위 부유층 1%가 전 세계 금융 자산의 43%를 소유한다. 반면 전 세계 약 50억 명은 더 가난해졌고, 북반구와 남반구 간에 경제 격차는 25년 만에 다시 벌어졌으며,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들은 2029년까지 매일 약 5억 달러 규모의 이자 및 부채 상환금을 변제해야 한다.(17) 이 보고서에 등장하는 수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코로나19가 지목 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상기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 역사상 숙명과도 같은 경제위기는 항상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빈부격차는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사고방식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자원 분배가 아닌, 빈부격차를 통한 경제성장을 지향했다고 말이다. 경제 주체인 국가와 기업 둘 다 이 지향점에 따라 움직인다. 자본주의가 유럽을 넘어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갈 때 사용한 뗏목이 제국주위와 식민주의다. 이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폭력적으로 부를 축적하여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남부 아메리카를 앞서 갔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역사의 저편으로 저문 뒤에도,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은 쉼 없이 벌어지는 중이다. 


또 모든 기업의 태생적인 목표가 독과점이라는 데서 이 지향점은 잘 드러난다. 미국에선 스탠더드 오일, 노던 시큐리티스 그리고 AT&T 같은 기업이 과도한 시장 지배력으로 인해 기업 분할이나 해체와 같은 반독점법의 적용을 받았다. 유독 미국에서 독점 기업이 등장하는 건, 미국이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패권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독점 기업이 등장할 모든 조건을 갖췄다. 국가나 기업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움직였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와 자유시장을 줄기차게 주장한 자본주의는 고비마다 유연하게 대처하여 살아남았고, 그리하여 세상을 특권층과 나머지라는 커다란 두 계급으로 갈라놓았다. 특권층은 더욱 쉽게 부를 축적하는 반면, 나머지는 돈 벌 기회가 손에서 모래처럼 새어나간다. 나머지 사람들은 빈부격차로 인해 삶이 날로 힘들기만 한데, 왜 자본주의는 건재할까? 우선 사람들은 기업이 혁신하고 국가가 그런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경제가 성장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다국적 디지털 기업은 여느 국가를 뛰어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자본주의에서 탄생한 기업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결정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이 내 삶에 유익하다고 철석같이 생각한다. 




16. 밀턴·로즈 프리드먼, 《선택할 자유》, 민병균·서재명·한홍순 옮김, 자유기업원, 2009, 137-138쪽.

17. 레베카 리델·나빌 아메드·알렉스 매이틀랜드·막스 로손·안젤라 타네자, 〈불평등 주식회사 - 국문 요약본〉, 옥스팜, 202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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