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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Aug 19. 2024

인문학의 종언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대학 인문학은 18세기 독일에서 산업화로 인해 사람이 수치로 평가받는 것에 대항하여 질적으로 연구하려는 학술적인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1) 이 주장이 맞다면, 우린 여기서 중요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인문학은 학문을 탐구하는 보편적인 수단이라기 보단, 시대적 상황에 발맞춰 등장한 특수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소위 문과로 분류되는 학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문대학에 편입되었고, 이런 상황은 1750년부터 본격적으로 발돋움했던 산업혁명 이후로 따져도 약 270년 전부터 일어났다.


인문학은 한 때 사람을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각광받았다. 사람들은 인문학에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담겨 있다 믿었으며, 국가든 기업이든 사람과 관련한 일을 하는데 인문학 전공자를 우대하곤 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온 세상은 인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을 알기 위해 인문학에 기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려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분석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전엔 이런 분석에 일정 비율로 정성적인 해석이 적용되곤 했으나, 그 비율은 갈수록 줄어가는 실정이다. 이제 심리학, 생리학, 해부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가 사람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내며, 이 분석은 사람에 관한 유요한 지식을 다가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뭐 하러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산업화의 안티테제로 나왔던 인문학이 도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안타깝지만, 인문학은 산업혁명에 패배한 건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문학이란 카테고리는 무수한 변화를 마주할 게 분명하다. 인문대학에 속해 있던 하위 분과는 무수한 해체와 결합을 겪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예술이나 종교처럼, 사람을 사람으로서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앞으로 인문학이 과학으로 대체되지 않을 만한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영향력은 날로 쇠퇴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이다.




1. Paul Reitter & Chad Wellmon, 유튜브 "충코 철학"의 '문과가 망해갈 수밖에 없는 이유' 편 참고.



☻ 이 글은 스레드 게시물을 각색하여 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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