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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호철 Aug 12. 2024

세상을 다시 보기 (2)

현황과 경로

우선 이 세상을 현대사회라 불러도 손색없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개변은 현실에 현대문명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이 문명은 이전에 없던 발상과 번개 같은 행동력으로 다른 문명을 압살 했고, 다른 문명은 사라지거나 껍데기만 남아 현대문명에 흡수되었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가 형제였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몇 퍼센트만 유전자에 남겨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세상이 현대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세상에 현대라는 왕관을 부여하는 것뿐이다. 현실엔 아메리카 현대사회나 유럽 현대사회 혹은 아시아 현대사회는 없고, 오직 현대사회라 부를 세상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와 관련하여 월러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의 ‘근대세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어느 날엔가 다른 혹성에서 그것과 비교될 만한 현상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 지구상에 또 하나의 근대 세계체제가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의 현실은 분명했다―그것은 오직 하나였다. (…)”(1) 그렇지만 현대사회도 엄연히 역사적 산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대 이전에 있던 세상과 마찬가지로 기원과 방향을 가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곧 근대 세계체제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세계체제는 지구의 한 부분, 곧 주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팽창하여 지구 전체를 뒤덮게 되었다. (…)”(2) 


잠시 용어 간 발생할지 모를 간극을 조율해 보자. 월러스틴에 의한다면 근대는 16세기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따라서 이 세상이 어떤 다른 이유로 힘을 상실하지 않는 한, 우리는 줄곧 이곳을 현재 거주하는 세상, 즉 현대로 인식할 것이다. 특히 영어 ‘modern’은 근대와 현대란 뜻을 모두 지녔다. 근대를 단어만 바꿔 현대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문명이 곧 현대문명이고, 근대사회가 곧 현대사회다.


다음으로 이 세상이 과연 어떤 경로를 거쳐 성장하고 발전하였는지 알아보자. 여기선 현대문명이 다른 문명과 경쟁에서 승리하여 지구를 독차지했다는 현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 문명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포섭해 영향력 아래 두었고, 이곳에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다. 21세기 들어 현대문명의 영향력은 더욱 확고해져 지구 밖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현대문명 없이 현대사회와 현대인은 불가능하기에, 우리의 탐구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근대 이전 거의 모든 유럽 사람들은 불합리한 조건에서 생활했다. 우선 지식은 계급마다 격차가 상당했는데, 특히 하층민은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삶에서 매우 불리한 여건에 놓였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했느냐는 곧 권력이었고, 이를 뛰어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신분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아서,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한 위계를 뛰어넘어 신분 상승할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부모 신분은 자식에게 세습되었기 때문에,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동안 다음 세대를 구속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하층민은 평생 다른 가능성을 꿈꿔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현대문명은 이런 구체제를 분쇄시킬 수단과 방법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계급 간 지식 격차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식과 정보는 날로 구하기 쉬워졌고, 하층민은 삶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손에 쥐게 되었다. 또 평생 동안 사람들을 옥죄었던 신분제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자본에 눈뜬 부르주아 같은 신흥 세력은 변화하는 세태를 잘 활용해 재산을 축적했다. 비록 그들이 근대에 또 다른 폐해를 낳긴 했지만, 예로부터 공고했던 위계는 흔들렸다. 오늘날 신분제는 그 나라 국민이 명예롭다고 인정한 경우를 제외하곤 명목상 사라졌다.


이전 문명과 비교하여 현대문명이 특별히 힘없는 사람들을 고려하진 않았다. 오히려 현대문명은 이전 문명보다 잔인하면서도 폭력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필요에 따라 끌어들이거나 버렸다. 역사를 살펴봐도 문명과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 문명은 발 닿는 곳곳마다 원주민을 살해하거나 착취했고, 본국이나 제3 국으로 노예를 실어 날라 식민지에서 노동력을 수탈했으며, 심지어 과학기술을 활용한 전쟁으로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각각 유명한 예시가 원주민 학살, 노예무역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이다. 


그럼에도 현대문명은 사고방식에 있어 이전 문명과 본질적으로 달랐고, 이것 덕분에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이것은 현대문명으로 하여금 이전에 없었던 힘을 갖게 하고, 막대한 힘으로 만든 권력을 합리화했으며, 합리화한 권력으로 생겨난 혜택이 누구에게나 돌아갈 것이라 선전했다. 덕분에 지난 역사에서 현대문명이 저지른 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현대인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현대인으로 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현대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출발점이 되는 사고방식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왜냐면 현대문명이 해왔던 선전과 달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사회 밑바닥에서 불안에 떨며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은, 현대문명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데서 생겨났다.




1.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I》, 나종일 외 옮김, 까치, 2013, 23쪽.

2.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 분석》, 이광근 옮김, 당대, 2005,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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