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ri Jan 26. 2024

특목고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특목고 합격 결과가 발표되었다. 

영재고, 과고를 시작으로 자사고, 외고에 이르기까지 한 해에 걸친 특목고 입시가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현재 재직 중인 학교는 중3 한 학급 36명 기준으로 보통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특목고 진학을 희망한다. 

3학년 340명 중 170명이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개교 이래 시작된 현상으로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우리 반은 36명 학생들 중 19명이 특목고에 지원하였고, 19장의 각기 다른 원서를 제출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전입 직후, 중3 담임을 맡아 진학 상담을 할 때에는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너무 과하다고 느꼈고, 모두 합격할 리 없음에도 막연하고 맹목적인 흐름으로 일단 준비하고 보자는 분위기는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부모의 강압으로 원치 않는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돌이켜보면 현상 자체를 비난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의구심을 안고 몇 차례 고입을 치른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선 ‘특목고에 꼭 가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책 전문가가 아닌 학교 현장의 교사로서의 이야기는 결을 달리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를 희망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근거리에 일반고 수가 부족해 1지망 일반고에 배정받지 못할 경우 멀리 있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동네에 특목고가 2곳이 있다. 즉 안정적으로 근거리 학교를 다니는 방법 중 하나가 특목고 진학이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소위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교육 환경과 실적, 진로와 관련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학교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바람 등 학생들 스스로도 진학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실체 없는 우려와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우선 이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학교에 가고 싶다는데 일단 돕자.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자. 

공부를 대신해 줄 수는 없기에, 생기부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지원에 힘을 쏟았다.

정기고사 준비를 열심히 해 A등급을 받고, 완성도 높은 수행 평가와 성실한 수업 태도로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채우고, 진로와 관련된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도록 조력하고, 독서 활동이 적절히 기재되도록 도서 목록을 정리하고, 교내 대회에 참여하여 입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자율 및 진로 활동에 특별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활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생기부가 풍부해지고, 자기소개서에 쓸 거리가 생기며, 진짜 경험이 있어야 면접을 잘 볼 수 있다는 당연한 원칙을 안내하고 점검했다. 안내와 점검이 교사의 역할이라면 실현은 학생의 몫이다. 목표가 확실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실천했고 생기부는 풍부해졌다. 그렇게 학생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붙고 누군가는 떨어졌다. 

문제는 이렇게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 이 아이들이 16살이라는 것이다. 합격한 아이들 중 누군가는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합격한 아이들 중 누군가는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남은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진학 상담에서 학부모,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 학교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이다. 처음에는 과거의 기록이 담긴 생기부와 관찰한 바를 토대로 합격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확신을 담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치 않는 대답이라 할지라도 이 질문에 대한 명백한 진실은, 합격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과목 A등급의 전교 1등이 불합격하거나, 유창하게 발표하기로 유명한 학생이 면접에서 긴장한 탓에 동문서답을 하고 오기도 한다. 당해 경쟁률 등 매해 고등학교의 상황이 다르고, 여러 학과 중 원서를 넣은 한 학과만 유독 경쟁률이 높아 떨어지기도 했다. 


정말 고민해야 할 질문은,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은 아이인가?”이다.

이 질문에 교사, 학부모, 학생 스스로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학생의 고입은 취업, 수능과 다르다.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특목고에 떨어진 뒤 진학하게 되는 고등학교가 가면 안되는 험한 곳인가? 원치 않았다고 해서 절망해야 하는 곳인가?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당연하게 진학하는 좋은 학교이다. 든든한 안전망이 있는 16살에게는, 최선을 다해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함보다 떨어져도 괜찮다는 편안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영재고, 과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수학, 과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어린 시절부터 영재성을 보이고 똑똑하고 공부 잘한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듣고 자란 학생들이다. 영재고, 과고는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생기부를 풍부하게 만드려는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독서활동 란이 비어있는 학생에게 과학 과목만이라도 2~3권 정도 채우기를 권한 적이 있다. 결국 몇 달 동안 두툼한 책 한 권만 읽어 왔는데, 담임 교사로서는 조금의 요령도 없는 모습이 답답하기도, 우직한 모습이 기특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었다. 심화 문제만 보면 풀고 싶어 안달 내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함께 해 줄 또래 친구들이 없어 외로워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고등학교를 상상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중 누군가는 2차 시험에서 떨어진다. 합격 인원은 정해져 있기에.  

과고, 영재고에 떨어진 경우 후기 특목고에 진학해야 하는가? 선태의 문제를 떠나 생각보다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과목에서 두루 A등급을 받아야 유리한 자사고의 경우 과고, 영재고 학생들에게 불리한 면도 있다. 새벽까지 수학, 과학을 공부하며 여타의 과목에 힘을 들이지 않아 B등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늘 월등히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기에, 막연히 잘되리라 생각하고 자사고 원서를 낸 뒤 불합격을 통보받는다.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일반고에 진학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영재고, 과고에서 떨어진 뒤 자사고에 불합격한 학생들은 준비 없이 연이은 실패를 겪은 채로, 무너진 마음을 수습할 시간 없이 일반고에 진학하게 되고 성적이 또 떨어진다. 처음부터 일반고 진학을 결정하고 차분히 대비했던 학생들보다 뒤처진 성적표를 받고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후기 특목고인 자사고, 외고에 도전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더라도 일반고에 진학하면 되니 괜찮다, 결과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이는 머리의 영역이다. 떨어진 뒤의 충격은 마음으로 닥친다. 원서를 제출하고, 고등학생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웃음으로 잠든 나날들, 두근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두둥실 설렜던 시간들, 학교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던 순간들을 놓기 쉽지 않다.

여기에 임직원 전형, 사회통합전형 등 경쟁률이 낮은 전형으로 합격한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 이러한 방법에 당위성이 있다고 여겨도, 속상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임직원 전형의 경우 그 수가 많고 전과목 E등급에 수업 태도가 몹시 안 좋았던 학생들도 합격을 보장받기에 박탈감이 더하다. 물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노력한 사람들이 모두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

더 노력한 사람들도 합격하지 못한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이 합격하기도 한다.

또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최선을 다했던 경험은 삶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노력의 대가가 가장 가까운 ‘합격’의 형태가 아닐 뿐이다. 당장 실감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진리이다. 단지 어른들이 크고 작은 아픔 끝에 직면한 이 깨달음을, 16살 아이들이 미래를 담보로 일찍이 경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특목고 진학을 위해 노력한 한 학생이 불합격한 이후에, 이를 값진 경험으로 여기며 다시 힘낼 수 있을까. 

며칠 울고 속상해한 뒤,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가 합격 가능성보다 중요하다. 잘 모르겠다면, 충분히 대화하며 그런 사람이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특목고 진학이 남은 고등학교 시간을 담보로 한 불안한 모험이 아닐 수 있다.

“열심히 하면 무조건 합격할 거야, 합격하면 이런 고민은 안 해도 돼”라는 말로 감춰 두기에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진정 바라는 것을 꺼내 본다. 

중학교 졸업의 대과업을 이룬 대견하고 기특한 학생들 모두가, 쉽게 오갈 수 있는 집 근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3년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며, 이후의 진로를 차근차근, 튼튼히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학교의 이름이 무엇이든.


더디더라도 만들어 보고 싶은 길이다. 




작가의 이전글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