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벨벳의 역설

블랙의 생동감에 대해서

by RB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은 달에서 본 하늘을 “black velvet sky”라고 표현했다. 이 수식어는 단순히 어둡다는 뜻을 넘어, 블랙이 지닌 압도적인 질감과 깊이를 함축한다. 검은 벨벳의 하늘은 우리가 지상에서 보는 밤하늘과 닮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둠이다. 지구의 검정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대기 중의 수분과 먼지, 도시의 불빛, 그리고 망막에 남은 빛의 잔상들이 완전한 어둠을 방해한다. 우리는 어둠을 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빛이 남긴 희미한 흔적 위에서 오염된 검정을 응시하는 셈이다. 따라서 지구의 밤은 언제나 미세하게 산란된 빛의 간섭을 받으며 '완전한 블랙'에 도달하지 못한다.


반면 우주에는 빛을 흩뜨릴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빛조차 산란되지 못한 채 진공 속을 직선으로 관통할 뿐이다. 광자가 우리 눈에 직접 닿지 않는 한, 우주는 완전한 블랙으로 우리 눈에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과학적인 역설이 발생한다. 우주의 블랙은 빛이 없는 부재의 결과라기보다, 빛이 흩어지지 않고 제 갈 길을 하는 순수성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빛이 사방으로 퍼져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에, 우리는 비로소 그 뒤에 숨겨진 광활한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칠흑같은 어둠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일까.


그렇지 않다.


그 안에는 수소와 헬륨, 우주 먼지, 그리고 아직 우리가 규명하지 못한 수많은 실체가 일렁이고 있다. 단지 너무 희박하여 보이지 않을 뿐, 우주는 결코 완전한 진공이 아니다.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그 검은 배경 위에서 일어나는 별의 탄생과 행성의 죽음을 관찰한다. 검정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넓어서 그 안에 채워진 것들이 미처 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출처: https://www.imdb.com/title/tt12042730/mediaviewer/rm578403842/?ref_=ttmi_mi_36_2


이러한 블랙의 생동감은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명확하게 구현된다. 고요하고 압도적인 검은 배경은 그 위에 놓인 외계 생명체 '로키'의 우주선을 마치 보헉처럼 선명하게 부각한다. 모든 색을 집어삼키는 블랙이 역설적으로 대상의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블랙이 가진 예술적 매력이다.


우리가 블랙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태도 역시 지구와 우주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지구에서 블랙은 오랫동안 '종말'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 생명이 멈춘 상태, 혹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 도사리는 미지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어둠을 경계하며 불안감을 가져왔다. 그러나 우주의 시선에서 블랙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곳에서 검정은 모든 일이 시작될 수 있는 '태초의 조건'이다. 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스를 응축하며 태어나고, 그 어둠을 배경삼아 비로소 자신의 빛을 드러낸다. 별의 죽음 조차 블랙이라는 거대한 어둠 속에서 새로운 별의 에너지원이 된다. 즉, 우주의 블랙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한 시작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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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주의 블랙은 다른 색을 지우는 파괴적인 색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존재들을 더 선명하게 세워주는 사려 깊은 배경이다. 우리는블랙의 깊이감에서 차분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느낀다. 보이지 않기에 끝을 상상할 수 없고,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하기에 끊임없는 경외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대부분의 미디어는 여전히 검정에 두려움을 투영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덧씌운다. 하지만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검정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닌 '가능성으로 꽉 찬' 역동적인 색이다. 고요해 보이는 검은 하늘 아래에서 지금 이 순간도 역동적인 우주의 사건들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 거대하고 생동감 넘치는 블랙의 하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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