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깨다식/약과 명인, 김영란 화순 향토음식연구회 고문
뒤늦게 시작한 음식 공부로 70대에 남도음식명인이 되다
명인의 이력은 흥미로웠다. 1950년생인 김영란 명인은 다소 늦은 나이인 73세에 남도음식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50이 넘어 시작한 음식 공부가 21년째 되던 해였다. 그는 30대 초반까지는 전라북도 소속 행정공무원으로 근무했고, 이후 20년간 화순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학원의 원장이었다. 대부분의 명인들이 평생 한 우물만 판 것과는 사뭇 다른 인생 여정이었다.
명인은 중학교 미술 선생으로 재직하던 남편을 만나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던 중에 집에 큰 화재가 났고 이 사고로 온몸에 피부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이후 개척교회 목사가 된 남편을 따라 시골 교회를 전전하던 명인은 화순읍에 정착했다. 개척교회 목사의 빠듯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고자 교회 성가대 반주 실력을 밑천 삼아 차린 피아노 학원은 수강생이 100명 가까이 되는 인기 피아노 학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또 다시 명인에게 유방암 판정이라는 시련이 닥쳐왔다. 항암치료를 위해 하던 일을 어쩔 수 없이 모두 내려놓고 쉬고 있던 명인은 우연히 한 지인에게서 화순농업기술센터에 향토음식반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날로 한걸음에 달려가 수강 신청을 했다.
명인은 화순 농업기술센터에서 향토음식 제조기술을 배우며 다수의 무형문화재 및 장인들에게 다양한 전통 조리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명인은 2008년 ‘제15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 농산물 조각 예술 경연 부문 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여러 음식 경연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마침내 2016년, 8폭짜리 ‘오징어 오림’ 병풍’ 과 ‘흑염소 육포’ 을 비롯한 총 36가지의 메뉴로 남도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3년에 ‘깨다식·약과’ 분야의 ‘남도음식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교회에서 세상일 모르고 살다가 그런데 나가니까 두려웠어요. 대회가 명인 제도와 연관이 되면서 심사가 매우 엄격해지더라고요. 경쟁도 무척 심해졌고요.. 그래도 ‘나도 한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죠.”
‘그대 가슴에서 뛰는 고동소리가 멈출 때까지는 그 무엇이든 늦지 않았다.’
명인의 소회를 들으며 시인 헨리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수명 120세 시대, 명인의 인생 여정은 달라진 세상의 새로운 표본 같았다.
끊임없는 연습과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최고의 맛을 구현
“매일 오전은 무조건 음식 만드는 연습을 합니다. TV 요리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새로운 메뉴를 보면 바로 시장으로 달려가요. 재료비에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죠(웃음).”
명인의 해맑은 웃음 뒤로 보이는 70대 노장의 멈추지 않는 열정에 왠지 숙연해졌다. 그러나 암 수술에 이어 폐 절반을 절단한 수술까지 받은 명인은 긴 시간의 노동을 버틸 수가 없다고 한다. 체력의 안배를 위해 명인은 하루 2시간 이상의 작업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명인의 작업 과정은 철저한 분업과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깨 엿강정에 사용되는 참깨와 들깨는 깨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수년째 직접 받고 있다. 명인에 따르면 깨 엿강정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깨의 품질’, ‘거피 방식’, ‘볶는 정도’라고 한다. 거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깨가 겉돌고 잘 뭉쳐지지 않고, 볶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바삭한 식감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수년째 손발을 맞춰오고 있는 방앗간에서 담당하고 있다. 깨만큼 중요한 재료인 쌀 조청 또한 가격이 비싸더라도 꼭 단골 거래처를 통해 최상품으로 엄선해서 공급받는다.
그렇게 재료의 품질과 처리 과정에 공을 들이다 보니, 명인의 한과는 한 상자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끊이지 않지만, 수일이 소요되는 작업이 버거워 판매용 제품은 여간해서는 잘 만들지 않는다.
그는 명인 선정 이후 칼럼 기고와 후학 교육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화순군민신문과 화순 저널에 향토음식 칼럼을 수년째 연재해오고 있으며, 화순 향토음식학교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명인의 한과 수업은 단순히 조리 기술뿐 아니라 원가관리 및 포장 기술까지 망라한 실제적인 상품화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 명인은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더욱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도음식 명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후학 양성과 기술 전수에 힘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명인의 맛, 남도 한과와 화순 향토음식
한과는 우리 전통 과자를 서양 과자와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명칭이다. 이는 다시 유밀과, 유과, 다식 및 엿강정 류 등으로 분류한다. 고려시대에 왕족 및 귀족층에서 크게 유행했던 약과는 밀가루와 꿀, 기름 등 귀한 식재료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치품 취급을 받았으며, 국가재정 고갈 및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들에 의해 제조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 전라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유독 심각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모양이다. 『성종실록』 성종 20년 5월 8일 기사에는, 어버이 상(喪)을 당하면 장례 하루 전에 유밀과를 성대하게 차려 놓는 등 장례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전라도 사람들의 한과에 대한 탐닉이 오히려 현재의 남도 한과 기술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남도의 한과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화려하게 아름다워요.
거기에 약과는 약과만의, 강정은 강정만의 고유의 식감이 살아있고요.
저는 특히 저만의 특색 있는 문양과 맛에 중점을 두고 한과를 만듭니다.”
명인이 취재를 위해 준비한 메뉴는 ‘약과’, ‘흑임자 다식’, ‘깨 엿강정’의 남도 한과 3종과 ‘파프리카 김치’ 였다. 명인의 한과는 한눈에도 일본의 화과자를 능가할 정도의 수려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문양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약과’ 는 명인을 남도음식 명인으로 만든 품목 중 하나다.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흐르는 약과는 파삭하면 서도 부드러웠고, 달콤하면서도 생강 향이 은은하게 감돌아 뒷맛이 깔끔했다. 명인은 이렇게 파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을 위해서 부풀린 형태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명인의 약과에 올려진 화려한 꽃 장식은 형태의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그가 고안한 장치라고 한다.
다식(茶食)은 볶은 곡식의 가루나 송홧가루 등을 꿀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찍어 낸 한과다. 다른 지역과 다른 남도 다식의 특징은 흑임자, 팥, 푸른 콩, 쌀 등 다양한 곡물가루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농경이 발달했던 지리적 특성으로 주로 곡물 가루로 만든 다식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 흑임자 다식은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다식판에 백사탕 가루로 문양을 먼저 넣은 다음, 흑임자 반죽을 넣어 찍어 내 아름다운 흑백의 조화가 돋보이도록 한다. 명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흰쌀 가루를 색색으로 물들여 다식을 찍어내 자신만의 차별화된 문양과 색감을 완성했다.
‘깨 엿강정’은 과거에 설날 세배 온 아이들에게 덕담과 함께 내어주던 선물이었다. 명인의 깨 엿강정은 남도 일대에서는 일찍이 이름이 났다고 한다. 초여름 날씨에도 명인의 깨 엿강정은 조금의 눅눅함 도 없이 바삭했고, 맛은 기분 좋게 담백했다.
파프리카는 화순의 특산물이다. ‘파프리카 김치’ 는 고춧가루 대신 빨간 파프리카를 갈아 넣어 담근 김치로 빛깔은 보통 김치보다 더 선명하게 붉지만, 맛은 꼭 백 김치와 같았다. 자극적인 매운 맛이 없어 어린이나 노인들을 위한 김치로 안성맞춤이다. 명인은 이 김치로 특허를 출원했다.
무료교육을 해서라도 남도음식 발전에 이바지
명인은 누구든지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면 무료교육을 해서라도 본인이 가진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일이 있다는 자체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교육을 놓지 못하는 건 사람들을 가르칠 때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제가 외국 여행을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나라 음식같이 우수한 음식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요.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감사하고, 음식을 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요.”
무리하지 않으며 즐겁게 지속하는 일을 하며 나눔과 성장을 도모하는 삶. 명인의 슬기롭고 충만한 일상이 고령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말미에 명인은 ‘남도음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남도 음식의 미덕의 첫째는 ‘맛’ 이고 둘째는 ‘풍성함’ 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많은 가짓수의 음식이 차려지는 것이 남도 한정식의 문제점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푸짐함’ 은 남도음식만이 가지는 고유한 지방색이며
따라서 지켜나가야 하는 남도 음식의 정체성이라는 말을 보탰다.
식 문화의 발전은 전통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킨다. 이 과정에서 동 시대성과 전통의 조합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하게 요구된다. 동시에 식 문화에 대한 경험도 가 높아질수록 소비자들은 정통성과 함께 디테일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높아진 한식의 위상과 경험도 로 인해 전 세계 미식가들이 한식의 지역적 특성에 주목하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남도 음식이 세계 미식 무대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가지고 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본문의 내용은 편집되어 내일신문 "혼을 담는 남도음식명인열전"에 기고되었습니다.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이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