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마포구 도화동 산 1번지 사람들

프롤로그

by 유 용수 Paul Yu


2024년 여름,


에미리츠 항공을 타고 두바이에서 서울로 가고 있다.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이 이제 막바지에 다다라 이제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고 있다. 그때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아파트 단지들. 세계의 많은 도시를 다녔지만 이렇게 아파트로 지면이 뒤덮이다시피 한 나라는 별로 못 본 듯싶다. 그야말로 아파트의 숲이다.


아파트.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는 서울의 마포아파트였다. 당시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마포아파트는 당시 현대문화생활을 자랑하는 문명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포아파트를 내려다보는 산꼭대기 지역인 도화동 산 1번지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삶을 영위했다.


정글짐, 시소, 철봉, 미끄럼틀이 있는 마포아파트의 놀이터를 갈 때면 언제나 뒷문 담을 넘어갔다. 정문으로 돌아오려면 한참 돌아가야 했기에 산 1번지에 사는 우리들은 언제나 뒷문 담을 넘어 들어갔다가 다 놀고 나면 다시 담을 넘어 나왔다. 여름날이면 순회영화차가 왔다. 아파트 벽면을 극장 삼아 빔을 쏘고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 주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돗자리를 들고 나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영화상영을 기다렸다. 러닝셔츠만 입은 동네 아저씨들, 할아버지들이 부채를 들고 아들 손자들하고 아파트 놀이터로 모였다. 흐릿한 영상의 영화를 보며 모두들 같이 울고 웃었다. 이렇게 영화 한 편만 보아도 다들 행복해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을 짬 내 마포구 도화동의 옛 동네를 돌아보았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넓게 보였던 콘크리트길이 지금은 비좁게 느껴진다. 옛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걷다가 50년의 세월을 넘어 거의 변화지 않은 집을 하나 발견해 내고 너무나 반가웠다. 그 집만은 세월이 비켜간 걸까.


그 허름한 집을 보는 순간 지나간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마치 타임슬립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 왔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존재이다. 까마득하게 잊혔던 과거의 일들과 감정들이 모락모락 다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1970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 산 1번지.


당시 우리는 주소가 없었다. 모두가 산 1번지 사람들이었다. 수천 가구가 빽뺵하게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국의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산 1번지. 그 당시 무허가라는 말을 처음 듣고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내 존재의 근원이 순식간에 흔들린 순간이었다. 반에 마포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있으면 다들 부유층대접을 받았다. 그래도 우리는 재미있게 산동네를 오르내리락 하며 많은 놀이를 하였고 밖에만 나가면 놀애들이 항상 있었다.

지금은 다들 그 동네를 떠나 낯선 주민이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어느새 내년이면 인생의 한 갑자를 맞이한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갔지? 스스로도 의아하기 짝이 없다. 전혀 의식이 없다. 그러나 내가 보는 산 1번지의 변화를 생각하면 세월의 무상함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때 산 1번지에 살았던 사람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노모를 통해 옆방에 살았던 동갑내기 친구의 사연을 전해 듣는다. 30여 년간 치열했던 해외살이가 언제 있었는가시피 사라져 버리고 그 친구와 바둑 두며 서로 씩씩거리던 감정들이 솟구쳐왔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고급스럽고 잘 정돈된 고층 아파트, 조경, 아스팔트 도로들을 보면 내가 지내온 산 1번지의 기억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이 현실이듯 내가 지내온 과거의 날들도 분명히 현실이었고, 그 지나가버린 과거는 현재의 현실 속에 녹아서 존재하는 것이리라.


사정없이 모든 것을 과거로 만들어 버리는 회색빛 시간에 저항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곳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재의 언어로 그려내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일종의 레지스탕스와 같은 일이라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 산 1번지 사람들의 삶을 여기에 그려내고자 한다.

이 작은 공간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2030년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하나의 마음 쉼터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