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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뚜 Feb 25. 2022

애는 여자가 키워야지

[아빠 시점] 육아휴직을 결심하다. 2편

아빠의 생신날이었다.



얼마 전에 형 내외까지 우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채로운 음식과 신성한 촛불 의식(?)까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두는 또다시 ‘아기’에게 모아졌다.

우리의 아기 ‘만두’는 당연한 것이고,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곧 생겨야 할(?) 형 내외의 아기까지. 

한국에 있는 이상 생신날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이런 대화의 포문은 항상 형이 연다.

“우리 아기는 우리보다 더 똑똑할 거라고 점집에서 그러던데?!”

껄껄 웃는 부모님과 어딘가 어색한 형수님의 묘한 조합.

우리는 만두의 존재로 부모에 한걸음 더 다가가서 그런가. 지금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만두의  intelligent함이 아니다.

“우리 만두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그게 Best지.”

거기에 덧붙여 예로부터 우리 집에 내려온 계약을 꺼낸다.

“아빠가 우리 애 태어나면 키워준다고 약속하고 잊지 않았죠?”

당연히 빈말이다. 나도 내 아기가 소중하니까…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기로 했다.




“와이프 출산휴가 끝나면 제가 육아휴직해서 키울거예요. 이 사람은 출근할거고요. 그때 약속지키셔야 해요~”


장난끼있게 말했지만 아빠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어느 큰 스님이 말씀하시길 아기는 최소한 2년은 엄마 품은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애는 엄마가 키우는거야. 아무리 니가 한다고 해도 안 되는게 있다.”


고대의 스님을 소환하여 1차 공격.


“맞다. 남자가 어떻게 애를 키우노. 애는 엄마 품에서 커야 잘 큰다.”


이어지는 형의 서포트까지. 그리고 엄마는 특별한 말씀이 없다.



가족들 앞에서 육아휴직을 선언하였고 경제적 부분에서의 어려움,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곤람함 등 다양한 공격들이 이어졌다. 나와 와이프는 그 공격들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나는 왜 우리 가족들은 나의 육아휴직을 지지해줄 것이라 생각했을까.

이제는 확실해졌다.


나의 육아휴직은 주변에 널린 편견들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일 것이다.

내가 낑낑대면 ‘쯧쯧… 그러게 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해서 저렇게…’ 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내가 어려워하면 ‘그러니까 남자가 무슨 애를 키운다고 그러는지…’ 하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자.’



이 생각은 부임한 학교에서 빛을 발했다.

밖에서 보기에 학교 선생님들은 애들이 가고 나면 편하게 쉴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애들이 있을 때가 대개 더 편하다. 애들이 가고 나면 담당 업무를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담당 업무가 정해지는 학년 초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업무를 맡기려는 학교 관리자들과 업무를 거부하는 교사들.

승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에는 업무, 특히 부장 맡기는 것은 쉬웠다.

오히려 본인이 부장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시절은 모두 카더라 시절이 되었고, 워라벨을 지키려는 새로운 세대들은 7만원짜리 수당 더 주는 부장 업무는 거절한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보통 관리자들은 학교에 남자 교사가 오면 모두가 거절하는 그 7만원짜리 부장 업무를 시키려 한다. 왜냐하면 ‘남자’니까.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교장선생님과 인사하는 자리.



“곧 아기가 나온다면서요? 축하해요. 언제 출산이죠?”


화기애애한 분위기.


“3월달에 나옵니다.”


무난한 대답.


“어~ 그런데 원하는 학년에 교과를 썼네요. 우리는 지금 교과 자리는 전입교사들한테는 못 주는데? 교감선생님이 그렇게 안내하지 않았나요?”


학년 및 업무 희망서가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제가 1학기 때 육아휴직을 할 예정이어서 담임이나 큰 업무는 못할텐데요?”


나의 공격. 그리고 상대는 눈이 동그래진다.


“육아휴직이요? 배우자 출산휴가 아니었나요?”


쐐기를 박는 나의 이야기.


“애기 태어나면 배우자 출산휴가 10일 쪼개서 사용할거구요. 애기 엄마 복직하고 제가 육아휴직 합니다.”



그리고 순간 어지러운 침묵이 이어진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깨는 한 마디.



“애… 애 밥은? 애 밥은 어떻게 하고?”



피식. 그냥 웃겼다.


“분유 먹이면 되죠.”


머쓱… 사냥감을 놓친 것을 직감한 것일까.


“아… 내 성 관념이 많이 old해졌네요. 한명이 휴직하면 힘들텐데 경제적으로도 괜찮을까요?”


참 감사하게도 걱정이 많으시다. 그런데 내가 육아휴직을 하든, 와이프가 하든 금전적으로는 마찬가지인데 이제와서 새삼스럽다. 망설임 없는 대답.


“네. 이미 이야기 다 끝났고, 계산 다 해놨습니다.”


그 다음 대화는 앞선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게 아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나는 최종적으로 교과 교사와 아주 가벼운 업무를 받았다.




*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이미 사장된 것 같았던 유교향 가득한 이 슬로건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살아있었다.

여초집단인 학교에서마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주 평등하게 말이다.

남자가 집안일, 여자가 바깥일을 하게 될 우리 부부는 생각보다 고될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 어딘가에서는 묘한 불길이 타오른다.



‘두고봐라. 누가 뭐라해도 내 애는 내가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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