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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Apr 10. 2023

'뜻밖의 횡재'란 숙소가 있는 도시

포카라 - Pokhara

Windfall
1. [명사] 우발적인 소득, 뜻밖의 횡재
2. [명사] 바닥에 떨어진 과실, 낙과(특히 사과)


말 그대로 우발적으로 발견한 숙소였다. 2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여행을 함께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을 때 나타난 게스트하우스 'Windfall'. 이름과 어울리게, 빨간 사과가 점 하나로 찍혀있는 간판을 가진 그곳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포카라(Pokhara)에 도착한 4명의 대학생들은, 각자의 짐을 진 채로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찾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20대 중반의 남자애들 일지라도, 트랙킹을 위한 10kg이 넘는 짐을 메고 이동하는 건 힘들 수밖에 없다. 2월에도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 당시 여행책자에는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표기된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들은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페와 호수(Phewa tal)를 끼고 한참을 걸어가고 나서야,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 눈에 보이는 2곳의 숙소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의견이 수렴되었다. 한 명은 저렴해 보이는 왼쪽 숙소로 들어가 가격협상을 하기로 했고, 나머지 세명은 오른쪽의 숙소로 들어가는 척하며, 왼쪽 숙소로 들어간 한 명이 가격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명이 가격을 많이 낮춰 협상에 성공하기 직전,


형! 저희 여기서 묵기로 해요!


오른쪽 숙소로 들어갔던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고, 당황한 사장의 눈빛을 보며 연신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나온 나는, 밖에서 일행들과 함께 사람 좋게 웃고 있는 'Windfall'의 한국인 사장님들을 만났다.




주변 숙소들보다 훨씬 좋은 시설임에도 저렴한 가격대의 게스트 하우스 'Windfall'은, 그 후로 우리 여행의 근거지가 된다. ABC 트랙킹을 떠나기 전에도, 갔다가 돌아오고 나서도, 심지어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베이스캠프'로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도시의 이미지보다, 숙소의 분위기가 나의 기억을 지배할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는지, 어떤 실수를 했었는지, 어떤 기분을 만끽했었는지. 앞의 '어떤'이 '숙소'라는 공간 안에 중첩하여 담길 때, 그곳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잠시 동안이라도 '집'이라 불릴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의 'Windafall'은 위의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곳이었다. 4명의 20대 대학생들에게도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찾아와, 이제는 30대 중반의 회사원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곳은 네팔의 '집'이라고 부르며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




여러 이야기가 'Windfall'에 담겨있지만, 숙소의 이름처럼 '뜻밖의 횡재'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을 한 가지 적어보자면, '인연'에 대한 일이었다.



'Windfall'에 짐을 풀고, 'Old Star'라는 맘에 드는 이름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온 우리는, 1층 테이블에 앉아서 사장님이 내주신 차를 마시며,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수다를 떨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포카라의 날씨 이야기, 각자의 여행 이야기가 한참 오가고 있을 때,


머리 이쁘게 잘랐네?


라는 말이, 한 여행객으로부터 나에게 날아왔다. 내 머리가 그렇게 독특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닌 머리도 아니었기에, 나를 안다는 듯이 걸려온 그 말은 평범하지 않았다.



테이블의 가장 안쪽, 오랜 여행으로 인하여 거뭇하게 탄 얼굴을 하고 있던 그 여행객을 알아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도 나를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렸기에, 첫인사를 '머리'로 걸어왔던 것이겠지. 6개월 전, 스페인의 한 길에서 만났던 우리는, 그 당시 머리가 산발이었던 나인 채로,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보다는 덜 탄 얼굴을 하고 있었던 그의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6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지구를 1/3을 돌아, 익숙지 않은 곳에서 그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별 것 아닌 인연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런 인연도 이루어지기에 어려울 터다(이 외에 다른 우연한 만남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처음 겪었던 일이었다). 그 인연이 우리의 여행에 있어서 '뜻밖의 횡재'로 이어져, 많은 도움을 받은 것 역시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름대로 산다는 옛말처럼, 'Windfall'은 우리에게 많은 우연함을 가져왔다. 지금보다는 지친 언젠가가 나에게 온다면, 다시 한번 그곳에서 '뜻밖의 횡재'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운을 기대하지는 않지만(기대한다면 '뜻밖'이 아닐 터이다), 그곳에 돌아간다면 떨어진 사과 한 알에 만족할 수 있길. 그리고 그 사과 한 알이 사는 데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처럼 나 스스로가 알아주길 바란다.


ⓒ photo by SimonaRi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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