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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nto Apr 27. 2023

#10. 오룡차가 우롱차였다니

대만 청차 수업에서 떠오른, 타이페이에서의 하루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기간 중,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하여, 당일 발권을 하고 공항으로 무작정 떠난 적이 있었다. 직항으로 3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를, 일단 떠나고 보자는 생각으로 2차례 경유를 통하여 23시간이 걸려 도착한 타이페이. 믿을 구석은 그곳에서 체류하고 있는 친구와 그의 대만인 여자친구였다.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해외에서 만나는 게 더 편한 친구인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보고 일단 먹자며, 타이페이 구석구석으로 인도했다. 우육면과 굴전, 샤오롱바오와 펑리수, 루로우판과 지파이, etc, etc. 걷다가 멈춰서 먹었고, 또다시 이동하여 먹었던 그 시간.


항상 우롱차가 함께했다.


뜨겁게도 마시고, 차갑게도 마셨으며, 들고 다니면서도 마셨다. 거기에다 대만의 국민음료라 불리는 버블티 가게에 갔을 때에도, 버블밀크티의 베이스로 홍차가 아닌 우롱차를 선택하는 친구를 보면서 놀랐다. '밀크티'면 당연히 '홍차'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우롱차'에 우유를 넣어서 먹는구나.


"넌 이것도 좋아할걸?"


이라며 추천해 준, 우롱차+패션푸르츠(백향과) 조합의 버블티는, 넉넉한 타피오카 펄과 패션푸르츠의 새콤달콤한 과육(+씨), 그리고 그 모든 향을 과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우롱차로 인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마시고 있는 게, 우롱차인데요?


대만 청차수업이 있는 날. 아리산오룡, 리산오룡, 고산오룡 등의 차에 대하여 수업을 들었다. 차나무가 자라는 산에 따라서, 높이에 따라서 붙는 이름들. 처음 찻집 'D'에 왔을 때 마셨던 '동방미인'이, '부진자'라는 벌레를 이용하여 재배한 대만 오룡차 중 하나라는 사실. 그리고 심벌에 벌레의 숫자가 많을수록 높은 등급이라는 등의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와중에, '대만은 우롱차도 많이 마시지 않나요?'라는 내 질문에 대하여, 쌤은 위와 같이 대답하셨다.


"우롱은 오룡(烏龍)의 표준 중국어 발음이에요. 찻잎의 색깔이 까마귀 같이 검어서 까마귀 오(烏), 구불구불하게 말려있는 생김새가 용과 같다고 하여 용 용(龍)자를 합쳐서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 검은 뱀과 관련된 설화도 존재해서 오룡차라고 한다는 문헌도 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보통 나한테 대입하면 맞는 말이니까. 그리고 오늘도 한 건 했다. 수업시간에 지나갔던 '대만오룡', '민북오룡', '광동오룡'등의 이름들이 전부 우롱차였다니. 꽤 자주 마시던 차를 눈앞에 두고도 구분 못하는 나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쌤은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대만에도 자생 차나무가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우이산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대만에 심어 재배했다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우이산에서 나는 '우이암차'가 대표적인 오룡차이고, 그 나무를 가져다 심은 대만 역시 '오룡차' 생산지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뒤로도 다양한 우롱차가 소개되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항상 되새김에도, 이렇게 확인받을 일이 있을 때마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리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잘 몰랐던 부분을, 이렇게 알아가는 것도 묘미가 아닐까 해요.


딴생각을 하는 게 얼굴에 티가 났을까? 쌤의 그 말을 들으니 다시 현실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알아가는 게 재미있는 것이다.



"그럼 대만 청차와 어떤 음식이 어울리는지 한 번 먹어볼까요?"


당연히, 쌤이 준비하신 다식은 청차와 잘 어울린다. 대추가 들어간 약식도, 천연 과일로 만들어진 젤리도, 잼 바른 빵도, 밸런스가 좋은 대만의 우롱차와 궁합이 좋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우롱차의 향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 대만의 음식이 기억나는,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음식 맛이 그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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