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월요일. 피드를 열었더니 주말 사이에 세상이 또 바뀌어 있었다. 새 모델이 나왔고, 누군가 그걸로 뭔가를 만들었고, 그걸 본 누군가가 핫테이크를 올렸고, 그 핫테이크에 대한 반박이 이미 세 개였다. 화요일엔 그 모델이 구식이 됐다. 수요일엔 새로운 밈이 돌았는데 목요일엔 그 밈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뒤처진 사람이 됐다. 금요일쯤 되면 월요일에 내가 뭘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재미없진 않다. 솔직히 말하면 꽤 재미있다. 새로운 것을 빨리 아는 건 나름의 쾌감이 있고, 그 속도에 올라타는 기분은 서핑 비슷한 데가 있다. 문제는 파도가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한 주가 끝나면 다음 주가 기다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새로운 것들의 양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서핑하는 건지, 그냥 떠밀려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진다.
거의 500년 전, 스위스의 한 학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책이 너무 많다고. 3년간 그 미궁에 갇혀 있었다고. 물론 그때는 만 이천 권이 '너무 많은' 세상이었으니 지금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콘라트 게스너라는 이름은 낯설 텐데, 하는 일은 익숙하다. 1545년, 인쇄 혁명 이후 쏟아지는 책들을 정리해서 최초의 보편 서지 목록을 만든 사람이다. 1,800명 저자의 12,000종을 분류했다. 그리고 서문에 이렇게 썼다. "혼란스럽고 해로운 책의 범람". 오늘날로 치면 구글을 만든 사람이 "검색 결과가 너무 많다"고 투덜대는 셈이다.
300년 뒤, 전보가 세상을 바꿨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신경학자 조지 비어드는 1881년에 '신경쇠약'이라는 진단명을 만들었다. 원인은 다섯 가지: 증기력, 정기간행물, 전보, 과학, 그리고 여성의 정신적 활동 (마지막 항목은 시대의 한계다). 비어드가 특히 주목한 건 전보였다. "모스 이전에 상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덜 걱정했다". 서부 소도시의 가격 변동이 한 시간 이내에 전국으로 퍼지는 세상. 실시간 정보가 실시간 압력이 되는 구조는 그때 이미 시작됐다.
1970년, 앨빈 토플러가 '미래 충격'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로 인한 압도적 스트레스와 방향 상실". '정보 과부하'라는 표현을 대중에게 처음 알린 것도 이 책이다. 600만 부가 팔렸다.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세네카도 "책의 과잉은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고 했고, 전도서에도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다"고 적혀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는 불평은 인류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러니까 지금의 피로감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다른 게 있다. 속도. 그리고 그 속도에 반응하는 내 모습이 모두에게 보인다는 것. 게스너는 책을 안 읽어도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감각에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있다. (이름을 붙이면 조금은 나아진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이걸 '사회적 가속'이라 불렀다. 기술이 빨라지고, 그래서 사회 변화가 빨라지고, 그래서 삶의 템포가 빨라진다. 세 가지가 서로를 먹여 살리는 순환이다. 기묘한 점은 기술이 시간을 절약해주는데도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거다. 로자는 이걸 '현재의 축소'라고 표현한다. 지난달의 경험으로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가령 이메일을 생각해보면,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었지만 확인하는 횟수는 비교도 안 되게 늘었다. 절약된 건 아무것도 없다.
한병철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이 피로는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스스로 하는 거라고. '피로사회'에서 그는 현대인을 '성과주체'라 부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데 새벽까지 트렌드 정리 영상을 보고, 뒤처진다고 느끼고, 더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성의 폭력은 빼앗지 않고 포화시키며, 배제하지 않고 소진시킨다".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같은 사람인 구조. 그래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렵다.
더글라스 러쉬코프는 '현재 충격'이라는 말을 썼다. 릴스를 30분 넘게 넘기다 '방금 뭘 봤지?' 하고 깨달을 때. 개별 콘텐츠에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다. 서사가 사라진 영원한 현재. "우리는 거대한 실존적 위기의 한복판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바빠서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이 상태를 부르고 싶은 이름이 하나 있다. '동기화 피로'. 정보가 많아서 지치는 게 아니다. 남들과 같은 시점에, 같은 속도로 반응해야 한다는 압력이 지치는 거다. 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든 패션이든 투자든, 관심사가 무엇이든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로이터 연구소의 2024년 조사에서 전 세계 응답자 39%가 "뉴스 양에 지쳤다"고 답했다. 2019년에는 28%였다. 5년 사이에 11%포인트가 올랐다. 지치는 속도도 가속되고 있다.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몇 가지 갈피는 잡힌다.
로자가 가속의 해법으로 제시한 건 '감속'이 아니었다. '공명'이었다. 소리굽쇠처럼, 세계와 서로 진동하면서 자기 고유의 소리로 응답하는 관계. 모든 것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응답할지 고르는 것.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추상적이다), 핵심은 단순하다. 트렌드를 '소비'하는 건 도구적 관계다. 뭔가에 깊이 빠져서 내 생각이 달라지는 건 공명이다.
실천으로 옮기면 이런 모양일 수 있다. 트렌드를 일주일 뒤에 본다. 진짜 중요한 건 일주일 뒤에도 남아 있고, 안 중요한 건 이미 사라져 있다. 저절로 필터링이 된다. 당장은 불안하다. FOMO — 놓침의 두려움 — 가 밀려온다. 한 연구에 따르면 FOMO와 소셜미디어 피로감은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 구조다. 피로해서 빠지면 놓칠까 불안하고, 불안해서 다시 들어가면 더 피로해진다. 알면서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도 시도할 만한 근거는 있다. SNS 사용을 하루 1시간 이하로 제한한 실험에서 3주 후 우울, 불안, FOMO가 모두 유의미하게 줄었다. 완전히 끊는 게 아니다. 줄이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었다.
물론 반론이 있다. 트렌드를 쫓는 건 사회적 연결이고 기회이기도 하다. 창작자에게 유행 파동은 초기 도달의 발판이다. 다만 그 기회가 모두에게 같은 조건으로 열려 있는지는 따로 볼 문제다. 전부 따라잡는 것과 전부 놓는 것 사이 어딘가. 그 어딘가를 각자 찾아야 한다는 게 솔직한 답이다. (매우 불만족스러운 답이라는 건 안다.)
한 가지 더. 모든 걸 따라잡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은, 결정 자체로 이미 무언가를 바꾼다. 미완결을 허용하면 회복의 리듬이 돌아온다. 트렌드는 끝나기 전에 다음 트렌드가 덮어쓰고, 우리에게는 마감의 감각이 없다. 의식적으로 '여기까지'라고 끊는 것. 그게 공명이 시작되는 지점일 수 있다.
월요일이 또 온다. 피드를 열면 주말 사이에 세상이 또 바뀌어 있을 거다. 새 모델, 새 밈, 새 핫테이크.
달라진 건 하나다. 전부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고, 내일이면 또 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안다.
게스너도 책이 너무 많다고 한탄했지만, 결국 모든 책의 목록을 만들었다. 만 이천 종을 분류하고도 그는 책을 계속 썼다. 과잉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포기만은 아니었던 거다.
나는 아직 피드를 닫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좀 천천히 넘기고 있다.
[1] Conrad Gessner, Bibliotheca Universalis, Christopher Froschauer, 1545. 정보 과부하 맥락의 학술 분석: Ann M. Blair, Too Much to Know, Yale University Press, 2010.
[2] George M. Beard, American Nervousness: Its Causes and Consequences, G.P. Putnam's Sons, 1881.
[3] Alvin Toffler, Future Shock, Random House, 1970.
[4] Hartmut Rosa, Beschleunigung (2005), 영역: Social Acceleration: A New Theory of Modernity,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
[5] 한병철, Müdigkeitsgesellschaft (2010), 한국어역: 『피로사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
[6] Douglas Rushkoff, Present Shock: When Everything Happens Now, Current (Penguin), 2013.
[7] Hartmut Rosa, Resonanz (2016), 영역: Resonance: A Sociology of Our Relationship to the World, Polity Press, 2019.
[8]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Digital News Report 2024, Oxford University. https://reutersinstitute.politics.ox.ac.uk/digital-news-report/2024
[9] Chao Zheng et al., "Relationship Between Fear of Missing Out and Social Media Fatigue: A Systematic Review",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 2025. DOI: 10.2196/75701
[10] Hunt et al., "Limiting Social Media Decreases Loneliness and Depression", Psychology of Popular Medi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2024. DOI: 10.1037/ppm0000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