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 사려고 사람을 자르는 회사들

그럼 잘린 사람들은 뭘하고 있나

by kimdonglin

오라클은 AI 데이터센터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만~3만 명의 감원을 검토하고 있다. 전체 인력의 18%다. 자본지출(CapEx) 궤적을 보면 속도가 느껴진다. FY2024에 $6.9B이던 것이 FY2025에 $21.2B으로 세 배가 됐고, FY2026 가이던스는 $50B이다. 1년에 두 배씩 뛰는 투자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사람이다.


블록(구 스퀘어)의 잭 도시는 더 노골적이었다. AI를 명시적 이유로 직원의 40%를 잘랐다. 4,000명이 나갔다. 감원 발표 직전 분기, 블록의 총이익은 $2.87B으로 전년 대비 26% 올랐다.


돈이 없어서 자른 게 아니다.


감원 발표 이후 한 달간 주가는 약 14% 올랐다. 시장은 사람을 자르면 박수를 치고, 사람을 뽑으면 인상을 찌푸린다.


주가가 오르면 성공이라는 뜻인지, 나는 아직도 그 문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풍경에는 빠진 숫자가 있다. 2025년 미국에서 발생한 120만 건의 감원 중 AI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건 약 55,000건이다.


전체의 4.5%. 샘 올트먼조차 "AI를 핑계로 감원하는 AI 워싱이 있다"고 말했다. AI를 만드는 사람이 AI감원을 워싱이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GPU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인건비를 줄이면 돈이 생기고, "AI 전환"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주가가 오른다. 셈법이 너무 깔끔하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자르나


AI가 정말로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라면, 왜 사람을 줄이나. AI와 기존 인력이 결합하면 같은 사람이 더 많은 태스크를 처리할 수 있다. 보고서를 쓰는 데 하루가 걸리던 사람이 반나절에 끝내면, 남은 반나절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두 건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굴리거나,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개선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도구 도입의 본래 가치다. 확장이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확장이 아니라 축소다. 반나절에 끝나니까 두 명 중 한 명을 자르자는 논리. 같은 양의 일을 더 적은 사람이 하게 되면, 결과물의 총

량은 변하지 않는다. 비용은 줄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의 크기는 그대로다. 확장의 기회를 비용 절감으로 소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르는 쪽의 판단 착오가 아니다. 나는 나간 사람들이 무엇을 할지가 훨씬 무섭다.


나간 사람들이 무엇을 들고 나왔는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5년을 일한 사람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수천개 기업에 배포되는지 안다. 기업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돈을 내고, 어디서

불만을 느끼는지를 내부에서 봤다. 아마존에서 일한 사람은 세계 최대 물류 네트워크와 AWS의 아키텍처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체감했다. 구글에서 일한

사람은 검색과 광고 시스템의 구조를 알고, 어디에 돈이 흐르는지를 안다. 메타에서 일한 사람은 30억 명이 동시에 쓰는 플랫폼의 스케일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했다.


이 사람들이 무서운 이유는 이력서에 빅테크 로고가 찍혀 있어서가 아니다. 대규모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디에서 병목이 생기고, 무엇이 비효율적인지를

내부에서 봤기 때문이다. 회의실에서 "이건 이렇게 바꾸면 더 나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조직의 관성 때문에, 분기 실적 때문에, 정치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그걸 다 기억한다.


더 넓은 세상을 봤다는 건 그런 뜻이다. 시장의 크기를 알고,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 고객의 패턴을 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빈틈을 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밖으

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밀려난 사람들이 다음 판을 깔았다

이건 처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페이팔이 2002년 이베이에 인수된 후 흩어진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보라.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세웠다. 리드 호프만은 링크드인을 만들었다. 피터 틸은 팔란티어를 세우고 파운더스 펀드를 열었다.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은 유튜브를, 맥스 레브친은 어펌을, 제러미 스토플만은 옐프를 만들었다. 한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의 다음 10년을 설계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터졌을 때도 그랬다. 수만 명의 엔지니어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 잔해 위에서 다음 세대의 거인들이 태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에

어비앤비, 우버, 슬랙이 시작됐다. 야후에서 나온 얀 쿰은 왓츠앱을 만들었다. 기존 체제가 사람을 밀어낼 때, 밀려난 사람들이 다음 체제를 만들었다. 매번 그랬

다.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빅테크에서 50만 명 이상이 해고됐지만 이후 데이터가 흥미롭다. 해고된 인력 중 63%가 창업에 뛰어들었고, 링크드인에서 "파운

더"를 자칭하는 사람이 62% 늘었다. 회사가 문을 닫아준 덕에 자기 문을 연 셈이다.


남아 있는 사람은 현상 유지를 한다. 떠난 사람은 새 판을 짠다.


이번에는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과거에 밀려난 사람들은 다시 팀을 꾸리고, 투자를 받고, 사무실을 빌려야 했다. 최소한의 제품을 만들려면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가 따로 필요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까지 시간과 돈과 사람이 걸렸다.


지금은 AI가 그 간극을 메운다. 코드를 짜고, 디자인을 만들고, 마케팅 카피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한 사람이 AI와 함께 해낼 수 있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AI로 자료를 정리하고, 구조를 잡고, 팩트를 검증한다. 1인 기업이 더 이상 프리랜서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AI를 도구로 쓰면 한 사람이 예전의 열 명 몫을 해내는 시대가 됐다.


인스타그램이 13명으로 10억 달러짜리 회사를 만든 게 2012년이다. 왓츠앱이 55명으로 190억 달러에 인수된 게 2014년이다. 그때도 세상이 놀랐다. 지금은 그보다 더 적은 사람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AI가 나머지를 채운다.


빅테크에서 대규모 시스템을 운영해본 사람이, AI를 도구로 들고, 둘이서 나선다.


대기업에서 수백 명이 붙어야 굴리던 서비스를 서너 명이 만든다. 못 할 게 없다.


진심으로 못 할 게 없다.


기술을 아는 사람에게 AI가 실행력을 곱해주는 시대다. 더 많은 스타트업 신화가 일어날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밀려난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타이밍은 없었

다.


자른 쪽이 두려워해야 할 것

GPU를 사려고 사람을 자른 회사들이 있다. 14% 오른 주가 그래프를 보며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생각해봤는가.


빅테크에서 시스템을 배운 사람들이, AI라는 무기를 들고, 한두 명이서 움직이고 있다. 당신 회사의 프로세스가 어디서 비효율적인지, 고객이 어디서 불만을 느끼는지, 내부에서 왜 바꾸지 못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다.


감원 발표일에 14% 오른 주가가 3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밀려난 사람들이 다음 판을 까는 데는 보통 3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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