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AI 시대에 무너졌는가? 더 중요해진 감도

기술이 상향 평준화될 때, 격차를 만드는 것은 결국 '취향'이다

by kimdonglin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Midjourney에 프롬프트 한 줄 넣으면 순식간에 포스터가 나온다. Adobe Firefly는 2025년 기준 기록적인 매출을 기록 중이며, Figma는 AI가 레이아웃을 잡아주는 기능을 기본 탑재했다. 마케팅 종사자의 절반 이상이 이미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사용해 봤으며, 디자인 프로젝트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분의 1로 줄었다. 그런데 시장 자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서비스 시장은 2025년 551억 달러에서 2030년 813억 달러로 성장이 예상된다.


동네 카페 사장님이 Canva Magic Design으로 인스타 배너를 직접 만든다. 1인 마케터가 썸네일을 외주 없이 뽑는다. 어제까지 디자이너에게 돈을 주고 맡기던 일들이, 오늘은 프롬프트 한 줄로 해결된다. '충분히 괜찮은' 결과물 — 이게 무서운 거다.


실제로 일러스트레이터 시장은 급감했다.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러스트 외주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는 증언이 나온다. 아동 도서 삽화 시장은 극적으로 위축됐고, 프리랜서 플랫폼의 일러스트 의뢰는 사실상 제로에 수렴했다. 주요 경제 기구들은 그래픽 디자인을 AI로 인한 고위험 직종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토스는 이 흐름 속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변화를 공개했다. 도구는 누구에게나 열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도구가 민주화됐는데, 왜 결과물의 질은 평준화되지 않는가? 혹시 AI는 모두를 같은 높이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격차를 더 벌리는 건 아닌가?


'감도'라는 병목 — Taste Is the New Bottleneck


같은 Midjourney를 쓰는 데 누구의 피드는 세련되고, 누구의 피드는 어딘가 촌스럽다. 같은 Figma AI를 쓰는 데 누구의 랜딩 페이지는 '있어 보이고', 누구의 것은 그냥 '있다'. 도구는 같은데 결과가 다르다. 차이를 만드는 건 도구가 아니라 감도다.


감도(taste, sensitivity)란 단순히 뭐가 트렌디한지 아는 것만이 아니다. 맥락을 읽고, 방향을 판단하고, 100개의 선택지에서 99개를 버리는 능력이다. 같은 서체가 2012년엔 모던했지만 2025년엔 기업적으로 보인다 — AI는 이 문화적 피로를 추적하지 못한다. 기계는 빈도를 추적하지, 피로를 추적하지 않는다. 패턴은 인식하지만, 의미는 부여하지 못한다.


Linas Beliunas는 이렇게 말했다. "바이브 코딩 시대의 진짜 병목은 코딩이 아니라 창의성과 취향이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실행의 병목은 AI가 풀었다. 남은 건 판단의 병목이다. 무엇을 만들지, 어떤 방향이 맞는지, 100개의 시안 중 어떤 걸 버릴지 결정해야 한다. 옵션이 무한해질수록, 버리는 능력이 희소해진다.

감도가 없으면 AI가 뽑아준 열 개의 시안 앞에서 "다 괜찮아 보이는데요"라고 말하게 된다. 그게 문제다.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못하는 사람은 그대로


AI는 평형장치가 아니다. 증폭기다. 데이터가 말해준다. AI 스킬을 보유한 프리랜서는 시간당 약 40% 더 높은 수입 프리미엄을 올린다. 대다수의 디자이너가 AI로 업무 속도가 향상됐다고 답했고, AI를 적극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직업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잘하는 사람이 AI를 만나면 더 빨리, 더 많이, 더 좋은 걸 만든다.


반면, 감도 없이 AI를 쓰면 어떻게 되는가. 능숙하지만 밋밋한 결과물이 나온다. 훈련 데이터의 평균으로 수렴하는 거다. 문화적 공명도 없고, 감정적 연결도 없다. '괜찮은' 것과 '좋은' 것의 차이 — 그게 감도의 차이다.

토스는 AI 시대에 디자이너 역할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공개하며 흥미로운 지점을 짚었다. 직접 만드는 사람은 줄었지만, 뭘 만들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는 올라갔다. 제작자는 대체됐지만, 방향 설정자는 대체되지 않았다. 결국 AI가 아무리 멋진 시안을 가져다줘도 사람이 소화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AI는 감도를 가진 사람을 더 잘하게 만들어줄 뿐, 감도를 훈련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을 선물하진 않는다.


양극화는 피할 수 없다 — 그래도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업들은 AI로 일자리를 줄이는 동시에 AI 스킬을 가진 인력을 새로 채용하려 한다. 줄이면서 뽑는다. 이게 양극화의 메커니즘이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AI에 노출된 근로자 중 상당수는 적응력을 갖추고 있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 장기적 어려움에 처할 위험이 있다. 새로운 기술이 평균 임금과 고용을 끌어올리면서도 동시에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더 깊은 문제가 있다. 주니어가 실무 감각을 키우던 입문 과업 — 러프 시안, 배리에이션 제작, 기본 레이아웃 — 이것들이 AI로 대체되면서 경력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의 효율은 올라가지만, 미래의 시니어 디자이너를 키울 파이프라인이 약해지는 것이다.


격차는 기술 격차에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도구를 써도 어떤 참조를 알고, 어떤 맥락을 읽는지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도구의 민주화는 접근성을 평등하게 만들었지만, 해석 능력의 불평등은 가리지 못한다.


결국 감도의 시대


AI는 도구의 민주화이지 안목의 민주화가 아니다. 디자이너의 가치는 '만드는 능력'에서 **'판단하는 능력'**으로 이동했다. 이 전환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앞으로도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감도는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다. 기르는 것이다. AI가 데이터를 먹고 자라듯, 사람은 경험을 먹고 감도를 키운다. 미술관에 가고, 전시를 보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하고, 자기 분야 바깥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 — 이게 사람이 스스로를 파인튜닝(미세 조정)하는 방법이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좋은 것과 그저 괜찮은 것의 차이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게 먼저다.


도구는 언제든 바뀌지만 내 감각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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