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da Feb 02. 2024

이커머스 마케터로 일했던 날들에 대한 기록

이커머스 마케터, 무슨 일을 할까?

나의 마케팅 커리어 사분면

<그렇게 진짜 마케터가 된다>에서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회사들을 아래와 같은 사분면에 그렸었다.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한 축, 그리고 PLC (Product Life Cycle)에 대한 한 축으로 그렸는데, 이번에 이커머스, 유통사로 이직하면서 내가 그동안 겪었던 회사들은 모두 브랜드사이고, 내가 완전히 새로운 인더스트리를 경험해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판매하는 상품'보다 더 큰 영역으로, 내 사분면의 한 축을 '산업의 성격'으로 확장해서 새롭게 그려야 할 만큼, 비즈니스의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렇게 사분면의 한 쪽 축을 산업의 성격에 따라 브랜드사, 유통사로 크게 나누고, 내가 새로운 영역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브랜드사에서 일해왔었다. 브랜드사에서는 브랜드의 지향점에 맞게 제품/서비스를 만들고 브랜드의 메시지를 개발하고 브랜드를 키워가는 일을 주요하게 했다. 그리고 지난 1년 간 이커머스에서 그로스 마케터로 일하면서, 이커머스를 포함한 유통사는 자신의 브랜드를 파는 것이 아니고, 브랜드사가 만든 상품을 입점시켜 판매하는 형태라 내가 브랜드사에서 하던 일과 다른 일들이 주요했다.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고, 이미 있는 브랜드의 상품을 중개한다는 사실이, 조직원으로서 비즈니스를 할 때 굉장히 많은 차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유통사, 특히 이커머스 마케터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됐고, 예전부터 들어오던 말들, 왜 MD가 유통업의 꽃이라고 하는지 등의 이유도 알게 되었다. 이커머스 마케터로 일하며 깨닫게 된, 브랜드사와 다른 유통사의 특징에 대해 기록해두려 한다.


상품을 중개함으로써 생기는 결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마케팅 메시지

브랜드사에 있을 때와 이커머스사에 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팔고 있는 상품이 우리가 만드는 것인가?’라는 차이였다. 유통은 다른 유통사들과도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상품을 팔기 때문에, 브랜드사와 전혀 다른 활동을 하게 된다. 브랜드사에 있을 때 마케터는 우리 브랜드의 지향점이 무엇이고, 고객들은 어떤 시점에 우리 브랜드에 대한 니즈가 생겨서 갖고 싶어하는지 등을 고민하고 이에 맞게 어떤 컨셉으로, 어떤 상품을 론칭함으로써 이를 전달할 것인지 논의가 주요했다. 물론 매출액 달성이라는 목표는 있지만, 그보다 더 상위의 목적은 우리 브랜드의 지향점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통에서는, 고객이 우리 유통사의 컨셉이 좋다고 굳이 똑같은 상품을 더 비싸게 살 이유가 없다. 우리에게서 그 브랜드를 사는 것이 의미가 있다기 보다, 나는 그 상품이 갖고 싶었고, 그 상품을 그 브랜드의 자사몰에서도 살 수도 있고, 할인을 하는 다른 유통 플랫폼에서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사의 메시지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고객은 어느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물론 내가 어떤 이커머스에 VIP 고객이라면 어느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 또한 내가 VIP로서 받게 되는 쿠폰, 혜택 등이 중요한 것이지, 이곳에서의 소비가 내게 어떤 가치를 주어서는 아니다.), 내가 A라는 브랜드가 사고 싶었고, 그 브랜드를 구매하려고 찾다 보니 이곳이 그 물건을 팔기 때문에, 혹은 이곳이 제일 싸게 팔아서 라는 이유로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A와 같은 브랜드를 계속 확보하기 위해, A라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의 형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터의 일이, 우리의 지향점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우리가 판매하는 셀렉션을 잘 보여주며, 할인 행사를 하는 브랜드를 어떻게 잘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주요했다.


그리고 광고단만 보아도, 브랜드사에 있을 때는 우리가 파는 상품이 수천수만 가지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떻게 큐레이션 해서 보여줄 것인가 라는 고민보다, 고객에게 우리 브랜드를 인지시키고 우리 상품 위에 덧씌우는 컨셉을 광고에서 보여주면서 구매로 이끄는 것이 중요했다. 이커머스에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주면서도 구매전환이 잘 될 것 같은 상품이 잘 노출될 수 있도록 광고를 구성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페이스북의 카탈로그 광고 (우리가 파는 수천수만 개의 상품을 고객이 남긴 시그널을 활용해서 가장 잘 구매할 것 같은 순서로 보여주는 광고) 보다 효과적인 광고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 물론 카탈로그 광고보다 효과적인 배너 광고도 만들었지만, 그 경우도 독보적으로 확보한 저렴한 가격을 소구한 경우였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밀어야 할지 셀렉션 논의를 하거나 혹은 제품 단에 어떤 변화를 주면서 전환율을 높일지 논의하는 형태로 마케터의 업무가 진행되는 것을 배웠다.


왜 MD를 유통의 꽃이라고 하는가

그래서 MD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MD가 얼마나 잘 우리 성격에 맞는 브랜드를 입점시키는지, 이미 유명하거나 혹은 팬층이 두터워 입점하기만 하면 매출액이 뛰고 신규고객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되는 브랜드를 잘 입점시키는지에 따라서 마케터의 활동도 함께 변화했다. (물론 어떤 성격의 브랜드들을 키워나갈지에 대한 논의는 함께 진행하지만) 그리고 이미 입점한 브랜드들의 경우 매 시즌마다 신상품이 나올 때 단독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을 미리 확보하고, 할인을 얻어내는 것이, 브랜드사에서 마케터가 컨셉을 만들어서 incremental을 만드는 것처럼, 유통에서는 신규 브랜드를 확보하고, 우리만 단독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을 빠르게 가져오느지가 incremental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유통의 꽃은 MD라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커머스 마케터로서 중요한 업무, '브랜드에 대한 정의와 그룹핑'

브랜드사에서도 우리가 만들고 판매하는 카테고리, 상품 중에 어떤 카테고리, 어떤 상품에 집중할지 논의는 하지만, 이커머스만큼 그 논의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브랜드사에서는 집중해야 할 카테고리, 상품은 명확했고, 이를 고객이 갖고 싶어 하도록 메시지를 덧씌우는 일이 더 중요했다. 반대로 이커머스는 우리가 어떤 이커머스 플랫폼인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포트폴리오 관리처럼, 우리가 어떤 브랜드들을 확보하고 있고, 집중 관리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어떤 브랜드인지, 어떤 상품을 노출하는지에 따라서, 고객들이 우리 플랫폼의 성격을 이해하고, 다른 플랫폼과의 차이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 메시지를 만드는 일 자체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들 중에 이 브랜드를 정말 노출하는 것이 맞는지, 이 브랜드를 노출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기준들을 논의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이 브랜드를 키우는 이유가 단순히 매출액을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이런 플랫폼이어서를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고, 시장을 먹기 위해 경쟁사에서 뺏어 오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더 큰 브랜드 입점을 위한 레퍼런스로 키우기도 하는 등 각 브랜드의 역할을 끊임없이 재정의하고 그룹핑하는 것이 주요했다. 직접적인 브랜드 메시지를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판매하고 있는 카테고리, 브랜드, 상품을 잘잘 쪼개서, 각각의 역할을 정의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그리고 각 브랜드들의 전체적인 상황까지도 이해해야 했다. 이 브랜드는 헤드룸이 얼마나 큰지 (전체 매출액은 얼마 정도 나오는지, 큰 브랜드인데 우리한테서만 못하는 건지, 작은데 우리 안에서만 잘하고 있는 것인지 등), 전환율이 전체 카테고리 대비 높은지 낮은지, 신규고객을 많이 모객하는 브랜드인지 아닌지 등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다양한 브랜드를 다각도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몇 천 개의 브랜드들을 그룹핑하고 역할 정의를 하는 것이 브랜드사에 있을 때 내가 관리하는 카테고리, 상품만 보는 것보다는 난이도 있게 느껴졌었다.


이커머스 마케터로서 중요한 업무, '고도화된 온사이트 활동'

그리고 아무래도 하나의 브랜드만 판매하는 자사몰보다는, 이커머스는 더 많은 유입자, 더 잦은 재방문에 기반하여 데이터를 보는 것부터 온사이트 내에 활동들까지 모든 것이 고도화되어 있어서, 광고를 통해서 밖에서 고객을 데려오는 오프사이트 광고도 물론 중요했지만, 온사이트 내에서의 활동 또한 매우 중요했다. 고객이 가입후 D+7 (7일 내) 첫구매 하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가입하고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났는지 등등에 따라 시나리오별 액션을 디벨롭하고, 첫구매로는 어떤 브랜드의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지, 더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리고 고객이 제품 상세페이지를 보고 나면 그 시그널을 활용해서 고객에게 구매 푸쉬를 하는 등의 여러 시나리오가 모두 개발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커머스에서 그로스 마케터로 일하면서 프로덕트 조직과 일하며 제품을 개선하고, 고객의 퍼널을 잘게 쪼개서 개선해 나가는 것들 또한 주요하게 했었다. 자사몰에서는 단순히 프로모션을 하면 이를 알리는 정도의 CRM 활동을 했었는데, 고객이 남긴 작은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구매하게 하고, 다시 방문하게 하고, 재구매하게 하는 등 제품에 대한 고민 또한 더 깊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에 담은 짤막한 예시보다 실제 업무는 더 고도화되고 더 복잡한 내용들이 있지만 정말 간략하게 일부만 담으며, 이커머스 마케터 업무를 회고해본다. 이커머스에서 그로스마케터로서 일하며, 모든 것이 브랜드사와 달라 새롭게 배운다는 재미는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 나라는 사람은 브랜드를 키우는 일에 더 강점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고객 특성을 고민해서 브랜드의 지향점을 만들어가는 일인데 이곳에서는 내가 잘하던 브랜드의 지향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갈급하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브랜드사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 마케터가 된 지 10년 차가 되었는데, 이 연차가 되면 커리어 고민은 없이 평온하게 나아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은퇴할 날까지 커리어 고민은 끝이 없음을 다시금 깨닫고 이커머스 마케터 업무를 기록해 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진짜 마케터가 된다> 출간 소식을 알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