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과 이미지가 너무 붙어있다 싶으면 이미지 코드 앞쪽 p style에 margin-top: 30px, 혹은 40px 정도 주면 될 거예요.”
(Paragraph의 위쪽으로 30px만큼의 띄운다는 의미이다.)
“모서리가 둥근 박스는 border-radius: 8px; 정도 주면 충분해요.”
(8px만큼 네 군데의 귀퉁이를 둥글게 만들어준다는 의미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더 둥근 모양이 된다.)
“글꼴이 조금 이상한 것 같다면 font-family는 다 떼었는지 확인해 보시면 돼요.”
(font-family는 글꼴을 설정하는 속성으로, 이걸 떼지 않으면 회사에서 쓰는 디폴트 웹폰트가 아닌 그 외의 폰트가 노출될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던 일 년 전의 나에겐 웃음도 나오지 않는 대화였다. 강의 소개페이지를 에디팅 하다가 궁금한 점을 물어봤을 때 나오던 대답이었다. ‘오... 제법 도망가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HTML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던 내게 얼마나 큰 시련이었는지 가늠이 되는가.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관광경영을 전공했지만 꿈을 버리지 못해 교육업계에 발이라도 걸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회사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다닐 수 없고, 개인의 환상을 채워주는 공간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을 원해서 들어왔는데 개발이라니! 그 당시에 내가 소속된 카테고리에서는 개발 강의만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종일 새로운 개발 관련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회의 때마다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게 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어떻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거냐고 묻는다면 쉬이 규정할 수는 없지만, 갓생 유튜버들이 사는 것처럼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운동을 가고, 매 끼니마다 건강하게 차린 음식을 먹으며, 일도 취미도 다 잡는 그런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열심히’의 기준은 다 다르지만 나는 대학생 때 나의 ‘열심히’를 다 산 사람이라 생각했고, 이제 취업을 했으니 조금 편안하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회사는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도 다니지만 결국 개인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일하는 곳이고, 사력을 다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나의 기준에서는 너무나도 열심히 살았고 난 그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대표님께서 두 달에 한 번 복지 차원으로 있던 ‘리프레시 데이’를 한 달에 한 번으로 늘리면 어떻겠냐는 말에 다들 일할 시간이 없어져서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왜, 더 놀아도 된다고 하는데 일을 하겠다는 거지?
나는 이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아니, 그 이전에 그냥 내가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주변을 보면 다들 버티는 거라고, 원래 힘든 게 맞다고 하는데 왜 나만 빼고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은지 열심히 살지 않는 것 같은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이는 입사 3개월 후 쓴 나의 수습회고에도 솔직하게 적었는데, 노는 걸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었다는 고백이었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으로 매일 회사에 가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고, 나 스스로가 황새를 따라가려다 찢어진 다리만 남은 뱁새 같았다. 회사에서 쓰는 디폴트 폰트가 아닌 다른 폰트가 나온다는 이유로 지워지는 font-family처럼, 나 또한 이 회사에서 추구하는 디폴트 같은 사람이 아니어서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는 별개로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내 나름대로의 방황이자 탈출구를 찾아 헤맸다. 자꾸 새로운 것을 탐닉하며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게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살다 보니 주변에서 나에게 열심히 산다는 말을 해주었다. 굳이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았던 내가, 회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던 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강의 에디팅 작업의 마지막 단계로 font-family를 떼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매일이 힘들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