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아이들이 손꼽아서 기다리는 날들이 몇 개 있다. 어린이날, 소풍, 크리스마스.. 그중 체육대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날이었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큼지막하게 쓰이던 점수, 스피커에서 빵빵하게 울리던 싸이의 ‘챔피언’ 같은 신나는 노래, 아이들의 발걸음에 묻어 나오던 운동장의 흙먼지까지. 교실에 앉아 지루하게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김밥을 싫어했다. 친구들은 보통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 한입에 먹기 좋은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 오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김밥을 싫어하는 걸 잘 알아서, 언제나 도시락을 쌀 때는 김밥 대신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셨다. 아침이면 따끈하고 고소한 밥 냄새, 유부초밥 특유의 새콤한 냄새가 날 깨워주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분주히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엄마가 싸주는 유부초밥은 언제나 8개였다. 주황색 기린 도시락통에 삼각형 모양의 유부초밥이 4개씩 2줄로 줄지어 있었다. 남은 밥만 뭉친 2개의 작은 주먹밥도 빠질 수 없었다. 특별한 날에만 만들던 음식인 덕에, 유부초밥이라는 건 굉장히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던 23살, 모든 것이 새로웠다. 설거지가 이렇게 빨리 쌓인다는 것도, 화장실 청소를 이렇게나 자주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3년간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과 어학연수를 하며 살았던 셰어하우스, 외국인과 같은 방에 살던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면서 잘 적응한 줄 알았다. 나는 독립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었다. 돌이켜보면 내 방을 제외하고는 누군가가 내가 쓰고 남은 흔적들을 모두 청소해 주었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멀었던 거다.
그리고 4년 정도가 지나 몇 달 전, 쿠팡에서 식자재를 구매하다 유부초밥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나서 이제는 컸으니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 하고 샀다. 설명서를 따라 밥에 조미유와 후레이크를 넣고 조물조물 섞은 다음 유부를 반으로 갈라서 밥을 그 안에 채워 넣었다… 벌써 끝이라고?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유부초밥은 만들기 어렵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몇 년의 세월을 거슬러,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싸주던 유부초밥을 이제는 내가 사서 직접 만들고 있는 모습이 제법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모습같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는 게 무서웠다. 내가 날 책임지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감이 들었고, 아직은 부모님께 기대면서 어렵고 힘든 일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막상 하나둘 부딪혀 보니 어떻게든 다 하게 되어있더라. 최근 장례식장과 결혼식장을 처음으로 가게 되면서 새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생겼다. 부조금/축의금은 어느 정도 하는 게 맞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봉투와 방명록에 이름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다 처음이라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가기 전에 다 찾아본 후, 가서는 태연하게 아는 척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어려워 보이는 게 있으면 시도도 안 해보고 일단 못한다고, 엄마가 대신 해달라고 생떼를 부리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커서 스스로 학습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느낌이 조금은 생소했다.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쌓여 단단해지면 익숙해진다. 어른이란 어떤 것이든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익숙해지며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