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야 하고, 계속 써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도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등교해야 한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나는 아프고, 나는 힘들고, 나는 괴롭고, 나는 외로운데, 선생님은 영어 단어를 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휘봉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친구들은 술판을 벌이는데 나만 재수학원에 등록해야 했다. 차가웠던 2월. 부모님 표정이 얼어붙고, 매일 아침마다 내 하늘이 죽은 듯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걷고 먹고 자고 일했다. 어머니는 내 도시락을 쌌다.
사업에 실패하고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세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 무너졌는데도 어떻게 세상이 멀쩡할 수 있는가. 세상의 일부가 아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절망했다. 감옥에서 나는,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었다.
매번 원하는 대로 글이 술술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쓴 글을 읽은 독자들이 환호하고, 나는 또 웃으며 글을 쓰고.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 쓴 글을 읽어 보면 창피하다. 이런 글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손발이 오그라들고 심장은 쪼그라든다. 몇 차례 수정을 거쳐 결국은 글이 내 손을 떠났을 때, 나는 수도 없이 무너지면서도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삶은, 쓰는 일과 닮았다. 헤어져도 등교해야 하고, 시험에 떨어졌어도 도시락은 싸야 하며, 실패하고 절망해도 세상은 돌아간다. 내가 쓴 글이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외면 당해도, 나는 오늘 또 글을 써야 하는 것처럼.
그냥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누군가 내게 말한 적 있다. 대수롭지 않게 받은 그 말 때문에 며칠 동안 잠 설쳤다. 그래.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이렇게 매번 글을 쓰면서 힘들어하느니, 차라리 속 편한 일 찾아서 하면 마음고생은 덜 할 것 아닌가.
직장 다니는 친구 만났더니, 스트레스 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했다. 사업하는 친구 만났더니, 불경기라 대출금 갚기도 힘겹다고 했다. 공무원 친구 만났더니, 자기도 글 쓰고 책 내서 작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냥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내게 권했던 사람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몇 달 뒤에 문 닫았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 생겨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글 쓰는 일도 문이 열리고 닫히는 현상과 다름없다. 어제는 형편없는 글을 썼지만, 오늘은 다시 백지를 마주한다. 오늘 쓴 글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일은 다시 하얀 종이 앞에 앉는다. 글쓰기는 시작이다.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 매일이 희망이고, 매일이 최선이며, 매일이 새로움이다. 나는 지금껏 똑같은 글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버지 모시고 병원 다녀왔다. 심장 부둥켜안고 쓰러진 지가 2년 지났다. 그때는 태산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나는 살았고, 아버지도 살았다. 언젠가 삶이 끝나는 날 오겠지. 아버지도 나도. 그럼에도 우리는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이것이 삶이다.
내 책과 글은 사람을 만날 터다. 그러다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어느 순간 도서관 한 쪽 구석에 먼지 뽀얗게 쌓인 채 꽂혀 있겠지. 때로 외면 당하고, 때로 구박도 받고, 작가인 나 자신에게조차 비난 받을 때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 주어진 빈 종이를 마주해야 한다.
쓴다. 쓰고 또 쓴다. 쓰는 동안 나는 내가 된다. 쓰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야기들.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이 삶과 연결되어 철학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신념이 되는 순간들. 이 모든 과정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나는 작가다.
수영 선수가 빛을 뿜기 위해서는 물 속에 들어가 있어야만 하듯이, 쓰는 사람이 제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있어야 한다.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오늘도 기어이 글을 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