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야, 임신하면 원래 그래’
임신 중 지겹게도 흐르지 않던 시간.
출산일을 잡고 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던 당일, 아기를 볼 수 있다는 설렘만큼 나를 기쁘게 했던 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임신을 끝낼 수 있다는 거였다.
누워만 있어도 벅찬 호흡과 무거운 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에 고통을 호소할 때면 다들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좋은 줄 알어, 애기 태어나면 더 힘들어져“라는 소리를 위로인 양 해댔지만 전혀 와닿지 않았고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는 사람에게 “기침 끝나면 열이 오를 테니 지금이 편한 줄 알아”라며 ‘넌 더 아플 거니까 지금 좀 덜 아픈 거에 감사해’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면서.
그렇게 고대하던 임신을 끝내고 나의 첫아기를 만나던 날부터 육아를 하며 틈틈히 글을 쓰는 지금,
누군가 다시 내게 “어때? 뱃속에 있을 때가 편했지?”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임신보다 할만해요.
그래도 할 말은 많아요.“
지나 보니 다행이였다 싶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던 할 말 많은 엄마의 에세이.
[이 정도면 배 내려온건가요]
[주수보다 머리가 크다는데 자분 가능할까요?]
맘커뮤니티에는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질문글이 자주 올라온다. 대부분 출산 방법과 시기에 관련된 글로 누구도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지만 혹시 경험자들의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서다.
출산 직전까지 결정을 못내린 나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경험담을 읽고 질문을 올리기도 했지만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넌___해야해”라고 말해준다면 차라리 그대로 따라가고 싶었지만 담당의사도 미적지근 시간을 끌어서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충동적으로 제왕절개를 결심하고 3일만에
아이를 낳은 건 나의 컨디션 때문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몸이 힘든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임신 기간. 특히 만삭일 때는 두문불출하고 하루종일 누워 지낼 정도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헉헉대며 침대에 누워 막달에도 나들이, 쇼핑을 다녀왔다는 다른 임산부들의 SNS를 볼 때마다 우울했고 검진 때마다 고통을 토로해도 병원에서는 “둘 다(태아도 임산부도) 건강하다”는 소견 뿐이라 나만 유난인건가 싶어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우울하게 버티던 때, 어느순간 호흡이 편해지고 눌렸던 속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상체를 압박하던 배가 아래쪽으로 내려갔고 밤에는 가진통으로 추측되는 진통이 찾아왔다.
자궁문이 1cm 정도 열렸다는 진찰을 받고 슬슬 나올 준비를 하나보다 하며 곧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웬걸, 다시 숨이 막히기 시작하더니 가진통도 아예 없어졌다.
‘아기가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간게 아닐까?’
‘나와야하는데 못나와서 아기도 고통받고 있는거라면?’
불안함에 38주차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서 아기를 빨리 낳아야 하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병원에서 “둘 다 건강하니 40주차 쯤 결정해도 된다”며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도 “건강하다잖아, 태아는 엄마뱃속에서 오래 있을수록 좋대“라며 예정일까지 더 품고 있길 바랬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가장 빠른 날로 제왕절개 날짜를 잡아달라고.
그렇게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다.
“아기가 예상보다 더 커서 자궁에 무리가 많이 갔어요. 미루지않고 수술하길 잘했어요”
수술 후, 첫 회진을 온 의사가 말했다.
빈혈 수치가 많이 떨어져 수혈을 받았고 수혈 후에도 수치가 올라오지 않아 수술한 부위에 출혈이 있나 본다며 초음파도 여러 번 봤다.
의사는 행여나 비난이 향할까 염려됐는지 회진 때마다 수술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원래 임신 중에도 좋지 않았고 산모 체질 자체가 회복이 더딘 편인거 같다’고 했다.
출산 전엔 건강하니까 괜찮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원래도 안좋았다니…
조금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누굴 탓하나 싶다.
의사에게 나는 그저 수많은 임산부 중 하나였을 뿐이고 증상도 임산부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 정도로 여거졌을테니까.
남편과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출산 직전까지도 “임신하면 원래 그렇대“라는 말을 건내다가 출산 후 꼼짝도 못하고 새하얗게 질려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당혹스러워 했겠지.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겼으면 안됐다.
타인의 얕은 경험과 형식적인 진료에 휘둘리며 유난처럼 보일까봐 눈치보지 말고 추가 검사 등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내 몸을 돌보았어야 했다.
결국 아픈것도 내 몫, 후유증도 나 혼자
감당해야할 몫이니까.
유난이라는 소리, 한번 듣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