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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May 26. 2018

양양의 바다

파도 걷기

2미터 남짓한 스티로폼 판때기 위에 엎드려, 찰박이는 잔파도를 느끼는 것은 꽤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난 8월 중순, 나는 3일의 휴가를 받아 강원도 양양으로 떠났다. 그 대단한 서핑이라는 것을 해보고싶었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알게된 모분의 말에 따르면 파도를 걷는 일이라는 그거.

여행과는 평소 거리가 먼 나였기에 서핑 하나만의 이유로 티켓끊기를 주저할 법도 한데, 의외로 선뜻 떠나게 된 건 그 사람의 영향이 꽤 컸다. 막연한 스포츠에서 양양의 서핑샵, 롱보드, 대여비용 3만 5천원 등 매우 현실적인 요소들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일테다.

사실 서핑이란 스포츠 자체에는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다.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집채만한 파도위를 자유자재로 가로지르는 영상들도 멋지긴 했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와 닿은 것은 다음에서 연재됐었던 웹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서핑을 주제로 한 웹툰은 처음이었고 그 내용도 색달라 인상깊었다. 높은 파도 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화려함보다, 초심자가 바라보는 서핑과 그 매력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작가 특유의 차분한 화법과 파도 밖에서 이루어지는 서핑에 대한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었다.

자연이 허락해주는 파도의 때. 한번의 테이크오프를 위해 팔이 빠지도록 해야하는 패들링. 파도를 기다리며 보드 위에서 출렁거리며 바라보는 석양의 시간들.

그런 부분들이 내게 진하게 와닿아 쌓여있었기 때문에, 뭔가 실행으로 옮기기 전 많은 동기부여가 필요한 내가 비교적 손쉽게 자극을 받아 떠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제대로 된 테이크오프를 해볼 수 없었다. 바다는 출렁이는 정도였을 뿐, 올라탈 수 있을 만큼의 파도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같이 강습을 받기로 예정 되어 있던 사람들이 지각을 해, 가뜩이나 짧은 입수 시간도 밀리고 밀린 상태였다.

덕분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세 시간동안의 패들링과 파도 위에 늘어져 떠다니는 정도였다.

하지만 서핑 외에 새로이 느낀 것이 있다면 바다가 생각보다 많이 무섭다는 점이다.

바다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기도 했지만, 보드 위에 걸터앉아 천천히, 의식도 못하는 사이 해변에서 밀려나는 느낌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줄은 몰랐다.

사방이 탁 트인 동해바다는 정말 보이는 그대로 망망대해라서, 그렇게 슬슬 떠내려가다 보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바다가 나를 낼름 삼켜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3시간 동안의 패들링이 죽을만큼 힘들어서, 그런 긴장은 금새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생각보다 사소한 죽음이 근처에 널려있었구나 하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또다시 호시탐탐 파도가 치는 바다로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더 그 무서움과 친해지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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