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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O Jan 27. 2019

계절의 발견

여름의 소회

-2018. 05. 19.


해가 바뀐지도 어느새 5개월이 훌쩍 넘었다. 방을 통조림처럼 밀폐해버리고 싶었던 겨울이었는데, 영상의 온도를 슬금슬금 먹어치우더니, 어느새 30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초여름이 됐다.

나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옷차림과 목욕물의 온도를 제외하면 계절이 불러오는 변화는 전무하다.
아, 냉장고 속의 캔맥주 재고량도 포함해야겠다. 더불어 환기의 빈도도.

그렇게 무심한 나도, 내가 속한 계절을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다.

예컨대 겨울이라면 이런 식이다.
바늘코도 허락 못할 만큼 촘촘히 내리는 함박눈송이가 조용히 속눈썹에 걸칠 때. 전선 위에 앉은 참새가 울음소리와 함깨 한줌도 안 되는 입김을 뱉을 때. 근처 교회의 종이 다섯번을 칠 동안 태양이 저물어 버릴 때.
먼지 한 톨 없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냉랭한 밤하늘에 북극성이 출렁거릴 때. 꽁꽁 싸맨 모자로 좁아진 시야에, 입김으로 안경마저 흐려질 때.

그렇게 하찮고 다른 것들 속에서 한 계절을 실감하게되면, 아, 작년의 지금과 올해의 지금은 같은 계절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시간은 한결같은 속도로 흘러가도, 그 속에 속한 나는 언제나 다른 모습이라 가끔은 내가 작년과 같은 지구 위에 있는지 확인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발견한 적 없던 작은 변화들을 찾아낼 때면, 세상을 더듬는 촉각의 종류도 다채로워지는 걸 이해한다. 아마 작년의 나는 봄비 소리에 스며드는 4월의 하늘도, 두드리는 햇빛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본 적 없다 했을테다.

어두운 방 안에서, 실눈 처럼 뜬 햇살 사이로 날리는 먼지들을 볼때면, 그건 언제의 계절에서 온 태양인지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비추던 태양을 아마 나는 몇번이고 발견해왔을 터였다.
다만 지금과 마지막의 발견 사이에서 몇 번의 계절을 건너뛰어 지금으로 도착한 건지. 그 사이의 계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매년 거짓말처럼 지나가는 연년의 면면 사이에서, 새롭게 관찰되는 세계들. 어느새 덧씌워져 사라지는 순간들이 내게 어떤 떨림으로 그 계절들을 남기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계절은 오는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곁에 있어도 알아챌 수 없다면 망원경에 포착되지 않은 멀고 먼 별과 다를바 없다.

결국 우리는 접안렌즈를 들여다보며, 그 광활한 시간의 바다 속에서 작디 작은 면적을 훑어가며, 비로소 그 순간 속에 존재하는 우리를 확인할 수 밖에 없다.


계절의 발견은 이루어진다. 그렇게 순간 속에서. 어느새. 문득.
막연한 시간의 흐름이 선명한 의미로 다가오는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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